경님, 답변을 드립니다.

경님, 상담소입니다.

올려주신 글, 잘 읽어보았어요.
오랫동안 묵혀왔던 고민일 거라 생각하니
제 마음이 많이 무겁네요.

오래 전에 헤어진 분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우선,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여기있는 상담원도 아니고,
가족이나 친구들도 아닐 거예요.
바로, 경님 자신이지요.

경님께서 지난 애인에 대한 기억을
항상 가지고 다니지 않고
옷장 한 켠에 넣어두기로 마음 먹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열심히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 보신다면
분명 어느샌가
또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님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경님께는, 첫번째 연애가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첫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오래 연애를 하다가 헤어짐을 맞게되면,
그 이후의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해요.

나에게 오는 첫번째 사랑은,
내 마음가짐과 내 삶을 처음으로 크게 바꾸어놓으면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주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러면서 내 애인은
나에게 유일한 존재이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가 되고
그녀와의 헤어짐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리곤 해요.
 
함께 앞날을 약속하는 대화를 나눌 때에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이 사람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갖으면서 말이에요.


그러다 어느순간 첫 이별을 맞게 되면,
갑자기 휘몰아치는 상실감과
한 순간에 예전처럼 변해버린 내 환경을
감당하기에 너무도 힘이 드는 것 같아요.

내 전부를 잃어버렸으니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요.

경님께서는 그동안 많은 방황을 하며
이미 여러번 자살 충동까지 느껴셨다고 하셨어요.

경님께서 그 분에게 가졌던 마음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그 분께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얼마나 많은 날을 함께 하리라 다짐해왔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기에,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지난 경험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기가
너무도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경님,
누군가를 사랑하며 느끼는 마음과
또 받아들이기 힘든 헤어짐은
우리 삶에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순간에는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헤어짐에는
비단 누군가를 사귀다 마음이 엇갈려
헤어지는 것 만 포함되지는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평생의 반려동물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며
너무도 사랑하지만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들이나 상황들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기도 해요.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때로는 아프지만
때로는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아나가고 있어요.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을
내게서 떠난 그 사람에게서
다시 나에게도 돌려놓는다는 의미에요.

매번 어렵고 힘들기만 한 헤어짐을 겪느니
차라리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외계인이 보면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은 상처를 딛고 일어나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짐을 겪으면서 살아요.

그건, 그 사람들이 남들보다 특별히 사랑에 '가벼워서' 도 아니고,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탁월해서'도 아니에요.

그보다
언젠가 있을지 모를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처를 감수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과정' 에서
느끼는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에요.

또, 지난 사람들과의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교과서 삼아
새로 만난 사람과는 조금 더 잘 해볼 수 있을거란
기대와 다짐을 하기 때문일 거예요.

경님께서도
3년동안은 행복함을 맛보는 데에 쓰셨고
8년동안은 첫 헤어짐을 연습하는 데에 쓰셨으니
이제는 다시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고 싶으신 거겠죠?

그런 마음이시라면
앞으로는 조금은 더 수월하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짐도 의연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경님께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전보다 닫혀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경님께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두가지가 있어요.

첫번째는,
경님께서 자꾸만 그 분이 생각날 때에는
혼자있는 시간을 지금보다 조금 더 줄이는 대신에
밖으로 나가 친구이든, 애인이 될 것을 조건으로 만나든 상관없이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하고, 활발한 취미생활을 하며
일상을 조금씩 공유해나가면서
관계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을 해보셨으면 한다는 거예요.

두번째는,
누구를 사랑하든, 누구와 함께 하든
경님 자신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닌
경님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누구보다 아끼고 보듬어주었으면 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누군가와 함께 했다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다시 찾기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혼자 있더라도,
내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너무도 많아요.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많고요.

상처를 나 스스로 돌봐주고 치유하지 않고
알아서 나을 거라 기대하며 내버려두지 마세요.
덧나고 곪은 상처가
경님을 다시 소진시키지 않도록 말이에요.

 

경님,
사랑에 대한 아픈 추억은,
다시 찾아오는 사랑만이 대체할 수 있다고 해요.

경님께 예전의 애인분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이고,
굳이 깨끗이 잊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앞으로
경님의 인생에서 그 분이 차지하고 있는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줄여나가셔서

아픔이나 후회나, 절실함보다
아련하고 흐릿하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경님의 마음에
편안하게, 혹은 두근두근하게
찾아오는 누군가가 있으리라 기대할께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여기까지 인 것 같아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2011-Y


상담소 1

댓글 1개

경님의 코멘트

진심으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읽은 순간 내내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어요.
아~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는거였구나 하고 새롭게 느끼게됐어요.
마치 님께서 제게 다시 사랑할수있는 허락을 내려주신것같아요.
정말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할지...
너무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