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상담 사례 7. 교제
각색 내담글
안녕하세요. 요즘 들어 너무 힘들어서 상담 좀 받아보려고요.
2년 전 만나고 사귀었던 언니가 있습니다. 그 언니는 저를 만나기 이전에는 여자를 사랑해본 경험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를 만나기 직전까지도 남자 애인이 있었고요. 그런데 일 년이나 만나오면서 꽤 여러 번 섹스를 시도했는데 늘 멈추고 말았습니다. 언니가 거부를 해서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미안해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까 따뜻한 애정과 우정으로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은 행복한데 섹스를 하는 문제 때문에 둘 다 너무 우울해졌습니다. 언니는 제가 원하는 섹스를 자기가 거부하니까 자신이 ‘불완전한 사랑’만 준다고 생각해서 우울해했고, 저는 언니가 저의 모든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한 느낌 때문에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섹스를 하지 않으니까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면 언니가 나를 배신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서 괴로웠습니다. 언니는 남자 애인과는 섹스를 한 적이 있었고, 그때는 이렇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고 했거든요. 내가 여자라서 언니가 나와는 섹스를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제가 너무 괴로워하는 것에 대해 언니가 죄책감마저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런 관계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서 육체적 사랑이 가능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언니에게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언니도 저를 위해서 그러마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언니는 잘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저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언니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언니에게 너무나도 미안했고, 죄책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이제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과 어쩌다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도 물론 여자고요. 지금은 둘의 사정상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사귀는 애인은 객관적으로 보기에 정말 좋은 사람이고, 같이 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애인과의 관계에서 또 육체적인 문제로 인해 트러블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 애인과는 매일 성관계를 갖는데 이제는 제 쪽에서 성관계를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같이 살다 보니 애인의 모든 것을 보게 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애인이 씻는 모습, 생리 중인 모습들을 옆에서 낱낱이 지켜보게 되니까요. 너무 지나치게 편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가족 같아져서 그런 건지, 아무튼 이제는 애인과의 섹스가 내키지 않습니다. 관계를 갖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기도 하고요. 저도 이런 제가 너무 이상한 것 같지만 진짜 제 마음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금 애인에게 제가 질려버린 걸까요? 육체적 관계가 오가는 사랑을 하고 싶어 선택한 사람인데 이렇게 되어버리고 나니 미칠 것 같습니다. 전에 사귀었던 언니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들고요. 지금 애인도 전에 사귀었던 언니에 대해 제가 다 말해줘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언니와 친구로서의 관계라도 회복하고 싶어서 다시 연락하려고 하는데, 그걸 애인이 절대 반대하며 막고 있습니다. 그런 애인의 태도가 밉기도 하고요. 자기도 전 애인이었다가 지금은 친구가 된 사람이 있고 또 그 사람과 꽤 자주 만나면서 왜 내가 언니를 만나겠다고 하면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면에서는 애인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고 애인 몰래 언니에게 다시 연락하자니 그건 좀 마음에 걸리네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상담글
어서 오세요. 상담소입니다. 전 애인과 섹스 관련 문제로 헤어졌던 일, 그리고 지금 애인과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적어주셨네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마음이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1) 섹스를 거부하는 전 애인과의 이별 경험 다루기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섹스를 거부하는 전 애인 때문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애인이 육체적으로 남자에게 흔들리게 될까 불안했고, 스스로도 이런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고도 하셨지요. 애정과 우정으로 함께하는 모든 일은 행복하지만 성적인 관계에 있어 여러 번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상담원은 감히 짐작해 봅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선 힘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전 애인 분은 마음속으로 동성 간의 섹스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성 간의 성관계가 거북하게 느껴지는 마음을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것이 필요했었을 텐데, 당신의 노력만으로 온전히 해결되기에는 어렵기에 더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면 언니가 나를 배신할 것 같다’라는 걱정을 하셨던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육체적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헤어지기로 했던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이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헤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애인과의 관계에서 이미 적지 않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무력하게 느껴진다면 이별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그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니 언니에게 이별을 고했던 과거에 대해 너무 미안해하거나 괴로워하지는 마시고, 보다 편한 마음으로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2) 현재 애인과의 내키지 않는 섹스 문제 다루기
그리고 지금은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셨지요. 애인과의 동거 생활이 행복하면서도 불만스러운 점이 있어서 점점 고민이 쌓여가는 날들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요. 남겨주신 글을 꼼꼼히 읽어 보면서 당신이 현재 교제 관계 속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을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우선 첫 번째로는 성관계를 포함한 애인분과의 관계 자체가 안정기로 접어들고 애인과 생활까지 모두 함께하는 상황에서 애인이 연인보다는 가족 같아져서 교제 초창기의 강렬함이나 설렘, 호기심 같은 감정이 많이 없어져버렸다는 점이에요. 커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 어떤 커플도 교제 초기의 열렬한 마음이나 상대에 대한 환상을 처음과 같게 유지하지는 못한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니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친밀해지는 과정 속에서 세심한 애정과 배려와 관심을 차곡차곡 쌓으며 따스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 교제관계의 매력이기도 하니까요.
마치 어떤 스타를 동경할 때 그 사람은 어쩐지 화장실도 안 갈 것 같다는 착각을 하기 쉬운 것처럼 사귀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애인이 갖고 있는 사소한 허술함이나 결점을 전혀 보지 못하다가 차츰 알아나가는 과정에서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요. 그런데 애인이나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점들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해 나가는 게 연애관계를 비롯한 깊은 관계에서 가능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닐까요? 그러니 혹시 연인인데 이렇게 가족 같은 기분이어도 괜찮은 걸까, 이렇게 서로 긴장감 없이 편하기만 해도 되는 걸까, 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계셨다면 조금은 더 마음을 편하게 가지셔도 좋아요. 가족 같은 기분이나 편안한 기분을 있는 그대로 누리셔도 좋답니다. 그것 자체가 기분 좋고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우정에 한없이 가까운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연애는 가능하답니다.
다만 그런 느낌들 속에서 성적인 자극도 더 이상 받지 못하고 매일같이 하는 성관계에서 다소 지루하고 의무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두 분이 솔직 담백하게 대화 나누시면서 머리 맞대고 풀어나가시길 권하고 싶어요. 사람마다 성적인 욕구가 클 때가 있고 적을 때가 있고 그런 주기가 커플 간에 잘 맞을 때도 있고 잘 안 맞을 때도 있답니다. 게다가 서로 많이 익숙해진 커플들은 더 이상 상대방과의 성관계로부터 즐거움을 못 찾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서로 얼마나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풀어갈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성관계의 횟수도 두 분이 이야기 나누어 조절할 수 있고요. 성관계를 할 때의 구체적인 방식들도 매번 섬세하게 조율해 나갈 수 있겠지요. 만약 섹스를 할 때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다면 짧고 박력 있게 하는 방식을 함께 찾아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제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색다르고 재미있는 방법들을 사용해 평소와는 다른 자극을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그러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힘드시다면 함께 온라인 여성 이반 커뮤니티의 성 고민 게시판들을 둘러보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도 있겠지요. 만약 여성간 섹스를 다루고 있는 출판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쉽지만 아직 한국에는 출판된 책이 많이 나와 있지는 않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예외적으로 <한채윤의 섹스말하기>라는 현재로서는 절판된 책이 있는데 상담소를 비롯한 몇몇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구비가 되어 있으니 찾아서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성적인 욕구가 별로 없을 때 애써 욕구를 느끼려고 노력하지는 않아도 된답니다.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도 있어요. 꼭 상대방이 나에게 더 이상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상태 자체가 현재 별로 성적인 데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거든요. 물론 상대를 아주 많이 사랑하더라도 그 감정과 무관하게 성욕이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이상한 게 아니랍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애인과 서로 솔직히 나누며 그런 대화를 통해 신뢰와 애정을 빚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3) 전 애인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애인과의 갈등 다루기
그럼 이제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현재의 애인이 전 애인을 친구로서라도 만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적어주셨는데요. 당신이 전 애인과의 이야기를 길게 남겨 주신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관계였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지금 나와 사랑하고 있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필요하고 귀중한 관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과거에 나와 아주 친밀하게 지냈던 전 애인이 그러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전 애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친밀하고 소중한 관계에서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보도록 노력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떠한 종류의 관계이건 간에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노력과 소통과 때로는 타협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마음을 미리 먹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상담원은 당신에게 전 애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 애인과 찬찬히 다시 논의해 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나의 욕구를 충분히 존중하되 그 욕구가 나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진솔한 태도로 애인에게 대화를 청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식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두 분의 관계에서 신뢰가 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애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별개로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정말로 바라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전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과거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도 있고 현재 애인과의 관계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갖게 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마음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당신의 마음을 비판단적인 태도로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애인과의 관계에서 나의 어떤 마음이 좌절되었고,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을 바라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나 자신부터 제대로 알고 있어야 연인간의 관계에서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인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때 그 문제의 성격이 어떤 것이든 내가 말할 때에는 솔직하게 정성스럽게 말하고 상대방이 말할 때에는 열심히 경청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상담을 마치고자 합니다. 대화의 결과로 어쩌면 연인 관계를 유지할 수도, 이별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어떤 껄끄럽고 어려운 화제에 대해서도 잘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