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상담사례6: 기혼 여성이반
각색내담글
저는 결혼한지 10년이 넘었고 사이가 나쁘지 않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입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 두 명이 있고요. 그런데 작년에 헬스장에서 만난 여자 강사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건강미 넘치고 털털하고 귀여운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함께 운동하다가 땀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섹시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한번도 제가 여자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학창시절에 여자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동성에게 성적으로 끌린 것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렇지만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사람이 저에게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고 우리는 사적으로도 만나게 되었답니다. 자주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커져 결국 사귀게 되었고요.
이제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어 자꾸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이성애자라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니 저는 어쩌면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친구와의 만남으로 인해 제가 살면서 느껴왔지만 무시했던 동성에 대한 감정들이 그냥 단순했던 것이 아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일반적인 여자라면 이런 비슷한 감정도 아예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한편, 우리의 사이가 깊어지면서 이 친구가 저에게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힘들어하기 시작했고 저 역시도 이 친구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상한 엄마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지만 이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정리가 잘 되지 않네요. 이게 사랑의 감정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쉽게 이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친구와 헤어지기도 싫고요. 지금이야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만 나중에 나이가 더 들게 되면 제가 이 친구를 편하게 살게 해줄 능력도 못 되고,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 가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이 친구에게 하면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이혼하고 자기에게 오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사는 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제가 이혼을 아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만약 이혼을 하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염려가 많이 돼요. 그리고 다른 여자가 좋아졌다는 이유로 제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때 아이들의 양육권이나 위자료를 결정하는 부분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이혼을 해야 하는 건지, 그냥 이 상태로 만남을 지속해도 되는 건지, 슬프지만 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 친구의 미래를 위해서 놓아줘야 하는 건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흔들립니다. 제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상담글
상담소입니다. 기혼자이시며 자녀도 두고 계시다고 자기 소개를 해주셨네요. 작년부터 동성의 상대와 교제를 하게 되면서 본인이 양성애자인 걸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게 되셨다고 적어 주셨고요. 남편 아닌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끌리시는 상황이고 그 상대가 동성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우신 상황일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
상담원은 가장 먼저 동성의 상대를 좋아하고 그 상대와 사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성적인 욕구를 갖는 모든 감정이 그 자체로 지극히 자연스럽고 존중 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 간의 사랑, 교제, 성관계, 혼인 등만이 존재 가능하고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동성의 상대에게 끌릴 가능성과 이성의 상대에게 끌릴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성애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워낙 강하다 보니 동성의 상대에게 끌릴 자기 안의 가능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이들이 상당히 많을 뿐이고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동성의 상대에게 끌리는 경험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성을 좋아하거나 사귀고 싶거나 성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자신을 스스로도 견디질 못하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힘들어하면서 자기 감정을 부정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이 여성에게, 남성이 남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이끌림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 자체로 소중한 감정입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한들 그건 잘못이 아니다, 여자가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인이 양성애자인가 동성애자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서둘러 규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남자를 좋아했던 경험, 여자를 좋아했던 경험들이 다 있는 분들의 경우 자기 경험을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본인을 동성애자로 정체화 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양성애자로 정체화 하는 분들도 있답니다. 자신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잘 보살펴 주고 고민되는 부분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시는 가운데 차근히 생각해 나가실 수 있을 거에요.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
(1) 자녀들과의 관계
한편으로는 동성 애인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셨어요. 특히 자녀들을 생각하시면서 '이상한 엄마가 되면 안 되니까 정신차리자' 라고 마음을 먹어 오셨다고 적어주셨지요. 엄마라면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당연히 드실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다 있어야 좋고,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아야 더 좋다는 게 행복한 가정의 모델처럼 굳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은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접는 데 있다기보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관심과 애정에 소홀함이 없는 데 있을 거에요. 부부라고 해서 마음이 변치 않으리라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고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헤어져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부부라면 당연히 어떤 일이 있어도 평생 함께 해야 하고 자식을 봐서라도 그게 좋다는 건 오히려 갈등과 불행을 심화시킬 수 있어요. 그때 그때의 상황 속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겠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설령 남편과 이혼하게 되더라도 엄마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걸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해서 불안하지 않게 해 준다면 아이들에게 '이상한' 엄마가 되지 않으실 거에요.
(2) 파트너와의 관계
그동안 결혼한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느라, 그리고 파트너의 상황도 챙기느라 마음이 많이 고달프고 지치셨을 듯 해요. 이 상황에서 선택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꼼꼼히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정답' 이라고 할 법한 건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 같습니다. 이성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큰 갈등 없이 동성 파트너와 교제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드시 서로 이혼할 것을 암묵적으로라도 합의하고 교제하는 사람들도 있고, 결혼관계를 맺고 있는 한 적극적인 교제로 진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양쪽이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식의 관계 맺기를 원하는지에 따라서 경우의 수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중 어떤 선택만이 정답이라거나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좋겠어요. 도덕이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고, 도덕적인 기준을 통해 선택을 하는 것이 현재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당위적 판단보다는 당신의 선택에 따를 것이라고 예상되는 여러 결과들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애인과는 앞으로 서로에게 약속할 수 있는 관계의 상이 무엇인지, 서로가 가진 욕구는 무엇인지 충분히 오랜 시간 소통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당사자인 애인 분이 현재 당신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당신과의 만남을 지속하거나 그만두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당신은 애인과 헤어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상대방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계시지만 상대방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당신이 짐작하고 있는 바와는 또 다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혼자서 어림짐작 하시기보다는 상담소에 적어주셨던 솔직한 마음들을 상대에게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스스로도 애인 분께 품고 있는 마음, 앞으로 이어나갈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남편 분과의 결혼 상태를 유지하실 생각이시라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남편과의 결혼 상태와 애인분과의 연인 관계를 동시에 계속 가져가는 것에 대해 얼마만큼 생각하고 계신지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고요. 현재까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 애인과의 만남이 지속될 경우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겨날 갈등이나 문제점들도 예상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남편과의 관계: 이혼
마지막으로 이혼을 선택한다고 할 때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스스로 이혼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유책배우자의 조건은 무엇인지, 합의이혼이 되지 않을 경우 이혼 소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위자료나 자녀 양육권 문제는 어떤 기준들을 고려하여 결정되는지에 대해 알아보셔야 합니다. 특히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이혼이 현재 한국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혼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보시려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http://www.lawhome.or.kr/ 와 같은 기관에 문의하시거나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사이트 http://oneclick.law.go.kr/CSP/Main.laf 에 방문해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당신이 이혼 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을수록 이혼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예기치 않은 상황들에 더욱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혼 과정에서 남편에게 커밍아웃을 하거나 동성과 교제 중임을 알렸을 때 동성애 혐오적인 상황에 놓일 수도 있음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남편이 두 분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혼에 합의하지 않거나 친지들에게 당신의 성정체성을 동의 없이 알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 받으면서 경제적인 지원이 중단되거나 법원의 판결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수도 있지요. 심한 경우에는 신체적이나 성적으로 폭력을 당할 수도 있고, 동성 커플이라는 것을 빌미로 협박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애인 분도 유사한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과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보다 현실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때로는 당신의 성정체성이나 동성과의 혼외 교제 사실 등을 당장 밝히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커밍아웃을 하게 될 경우에도 외도 사실이나 이혼과는 별개로 아웃팅이나 성 정체성으로 인한 폭력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남편에게 알리세요. 그리고 성정체성을 이유로 피해를 입게 될 때에 저희 한국레즈비언상담소와 같이 도움을 청할 곳을 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떻게 남편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내고 이혼 합의를 이끌어낼지에 대해, 그리고 동성애 관계로 인한 협박과 아웃팅에 대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에 각별히 주의를 쏟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 후의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자립을 할 수 있는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그 계획이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어떤 면에서 당신은 제도적 결혼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이라는 혜택을 받아왔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포기하고 이혼을 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중요한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고 그러한 용기를 낼 것인지, 혹은 지금껏 누려왔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셔야 합니다. 만약에 변화를 하기로 선택한다면 그러한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하세요.
마지막으로, 이혼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현재 애인 분과의 관계가 절대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남편과의 관계와 결혼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지만 오로지 현재 애인 분과의 관계만을 바라보며 이혼을 결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후에 애인 분과의 관계가 변화하게 된다면 그러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그 책임을 애인 분에게 돌리며 원망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남편과의 관계가 변화한 것처럼 애인과의 관계도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신이 새롭게 한 경험들로 인해 더 이상 이성애 결혼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혼을 고려하는 가장 주된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