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여성 성소수자를 위한 마음치유 프로젝트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2부 ‘커밍아웃 워크숍’ 을 진행하였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신 미율님의 생생한 후기를 전달드립니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커밍아웃을 쉽게하는 정도로 자주 커밍아웃하는 편이지만 늘 미래에 부모님한테 할 커밍아웃이 두려웠고 나에게 혐오 발언하는 지인들에게 뭐라고 반응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는 일도 많았었다. 최근 내 자신을 숨기기 답답했던 새벽에는 받을 사람 없는 커밍아웃 편지를 써봤었다. 어차피 줄 생각도 없는 편지를 울면서 쓰다보니 후련하고 정리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의 미래에 확신은 더 흐려졌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걱정만 늘었다. 그러다 몇 주 뒤 트위터에서 커밍아웃 워크숍 모집글을 봤고 당장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워크숍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신청한 뒤에 주변 지인들에게 두근거리고 기대된다고 자랑하고 다녔었다. 첫 날은 이 워크숍을 들으면서 지켜야하는 사항들을 소리내어 읽었고 너무나 당연하지만 기대 할 수 없던 지금까지 포기해왔던 지킴들이라 괜히 마음이 찡했고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껴졌다. 첫 인사는 세가지 단어들로 본인을 소개한 뒤 지나온 나의 퀴어 라이프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나의 첫 퀴어 첫사랑도 이야기하고 지금까지 덮어두고 잊어온 나의 부정기도 기억해냈다. 똑같은 주제로 자기 자신을 소개했지만 사람들마다 말하는 방식도 다르고 어릴 때 부터 지향성을 알았던 사람들부터 최근에 깨달은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항상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워크숍에선 참가자분들과 활동가분들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그런지 말을 심하게 많이 했었다. 두번째 주에는 몸을 쓰는 수업이었는데 스트레칭을 한 뒤 몸으로 내 미래를 표현해보고 다 같이 걷다 멈추는 활동도 했다. 이 날 제일 기억에 남는 수업은 나눠주신 단어들 중 단어 하나를 골라 소리내지 않고 입모양과 행동으로 보이며 그 상황을 다른 참여자들이 알아맞추는 수업이었는데 뭘 표현할지 고민하다 잊고 지냈던 상황이 생각났고 내가 그 상황을 표현 할 때 다들 경멸하는 반응을 해줘서 다들 그 상황을 만든 사람을 등지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속이 시원했다. 세번째 주엔 퀴어 필독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를 쓴 유부녀 레즈비언 김규진님과 커밍아웃 만렙 하바라님이 와줘서 강연해줬는데 이상하게도 하바라님이랑 내 커밍아웃 횟수가 비슷한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도 커밍아웃 만렙인가 의아했다. 내 꿈이 레즈비언 결혼일 정도로 미래의 동반자와 함께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규진님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사실 주변에 결혼한 퀴어는 아예 없어서 사실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질문도하고 답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보니까 앞으로 내가 미래에 애인이랑 결혼해 늙어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또 지금까진 최악을 생각하며 부모님에게 할 커밍아웃을 미뤄왔는데 생각보다 부모와의 연은 끈질기고 끊기지 않을 거라는 규진님의 말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다양한 질문들과 답을 들으며 내 안에서 고민하던 질문들의 해결책을 찾고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 네번째 주를 기다리며 과제로 받은 편지를 써봤고 워크숍 듣기 전에 쓴 편지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편지를 갖게 되었다! 이 날은 커밍아웃 실습을 했는데 내 생각보다 부정적인 반응으로 실습을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서로 용기를 주는 활동을 해왔는데 갑자기 내가 다시 거부당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너무 좋은 상황보단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아가고 상처를 덜 받을 수 있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그런 수업을 하셨겠다고 생각한다. 커밍아웃 전까지는 나의 고민이고 후는 상대방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커밍아웃을 받는 상대방을 맡아 대화해보니 생각보다 두려웠고 뭐라고 반응할지 고민되고 무서웠다. 지금까지 너무 나의 감정에만 휩쓸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부담을 주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늘 커뮤니티에 소속되고 싶었는데 관련 정보가 없어 미루고 미뤄왔었다. 하지만 이번에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워크숍을 진행해준 레즈비언 상담소 활동가분들이 친절하시고 자상하셔서 가입 고민중이라고 말했더니 두 분의 눈이 너무 반짝거려서 고민없이 빠르게 가입했다. 앞으로 나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워크숍이나 활동에 도움이 되어보고 싶다. 뒷풀이 때 이야기했지만 앞으로 이런 워크숍들을 꾸준히 열게되어 나처럼 답답한 새벽에 혼자 고민하거나 생각하느라 힘들 여성 퀴어들이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며 조금이라도 힘을 얻어가길 바란다. 또 우리들이 너무나 당연한 존재라 이런 워크숍 없어도 될 정도로 퀴어 프렌들리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