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토)에 2019년 1기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이 열렸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신 분들 중 4명의 회원님이 후기를 보내오셨습니다.
새로 오신 회원분들을 환영하며, 후기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 커피님의 후기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 후기 “ㄸ ㅏ ㄸ ㅡ ㅅ ”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나섰는데 날이 따뜻했다. 봄은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착실히 오고 있구나 싶었다. 상담소에 도착해 가입서를 쓰고, 서로 소개를 나누고, 제비뽑기를 해서 질문을 교환하니 어색했던 분위기도 풀어졌다. 멋진 바다 경치, 스크린 타임, 넷플릭스, 음식, 첫사랑 얘기 등등 화제는 다양했다. 말을 녹여서 해본 게 얼마 만인지. 상담소의 역사도 공부하고, 활동의 기본 매너를 역할극으로 낭독한 시간도 즐거웠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불어넣어 준 강점 찾기 테스트를 통해 상반기 어떤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알아보았다. 의지만으로 용기를 지탱하기는 어렵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운동모임 <슬나볼(슬슬 나서 볼까)>에서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기르기로 다짐했다.
뒤풀이를 하러 이동하는데 밖이 꽤 추워져 있었다. 또 시간이 지나자 눈이 내렸다. 한참 대화를 나눠도 헤어지는 건 늘 아쉬운 일.
다음에 상담소를 찾을 날이 기대된다. 우선 여성의 날 피켓 준비 모임 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받은 온기를 기억해서 나 역시 많은 이들을 맞아주고 있는 상담소의 난방에 보탬이 되고 싶다.
– 커피
2. 정은아님의 후기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듣자마자 신청도 하기 전에 미리 일정부터 빼두었지만 정작 당일이 되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정말 얼굴을 까고 여러 사람을 만나도 되는 걸까, 괜찮을까,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지,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가지 말까, 그냥 가지 말자, 하고 서른 번은 생각했다. 그래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이번에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또 언제 상담소가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을 하게 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적미적거린 탓에 조금 늦었다. 승짱님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사실 조금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화받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상냥한 데다 늦은 나를 위해 따로 마중을 나오시는 분에게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어,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며 기다렸다.
상담소는 아지트 같았다. 표식도 없고 간판도 없고 지하인 데다가 여성 성소수자 운동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독재 치하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는 비밀아지트 같았다! 등사기로 삐라라도 찍을 것 같고, 불도 다 끈 채로 소근소근하면서도 강렬하게 토론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두근거렸다. 오, 독립투사된 기분! 민주열사된 기분!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여성혐오와 성소수자혐오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여성 성소수자 운동을 하고 있으니 그들과 다를 게 뭐람, 싶었다. 나, 세상과 싸우는 거 맞네, 비밀아지트의 투사 맞네.
사람들은 다들 어쩜 그렇게 좋은지 선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서로에 대한 호의와 신뢰가 가득한 분위기. 그리고 안전해서, 즐거운 곳.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떡과 방울토마토, 귤이 있어서 음식도 걱정 없이 먹었다. 비건이 먹을 음식이 있어서 좋았다. 더 많은 메뉴가 비건이면 좋겠다. 왜냐면 초콜릿을 몹시 먹어보고 싶었는데 비건 간식이 아니라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맛일지 지금도 살짝 궁금하다.
소모임과 프로그램도 멋졌다. 마음 같아서는 다 하고 싶었다. 자기 긍정 프로그램과 벽장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은 정말 상담소라서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정말 신경을 많이 쓰신 것이 느껴졌다. 자기소개 시간도 재밌었고 자기강점 찾기를 통한 상담소 활동 소개도 참신했다. 여러모로 즐거웠다. 만화로 보는 이 공간의 규칙은 귀엽고도 유익했고, 상담소의 역사를 들으며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았다. 어지간히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강의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정말 처음 듣는 일이 많았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상담소 재정이 많이 열악하다는 게 마음 아팠다. 월 120만원이라니! 후원의 밤을 해야 하나 협찬을 받아야 하나. 프로젝트라도 내야 하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후원금 증액을 하고 싶다. 어서 부업을 만들어 부수입을 창출해야지.
마음 따뜻하고 재미난 오티였다. 다음 상담소 활동이 기대된다.
– 정은아
3. 제제님의 후기
2019년 2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 신입회원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오신 분은 9명. 미아, 명이, 반제, 슐라, 은아, 커피, 팡, marade, 그리고 저. 맛있는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어요. 자기소개 후 닉네임을 외우기 위한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 게임을 했는데, 한 분도 틀림없이 한 번에 끝내서 놀랐습니다! 끝쪽에 계신 분의 귀여운 커닝 덕분에 다들 웃었고요.
그 후엔 질문이 적힌 쪽지를 뽑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랜덤 뽑기였는데, 맞춤형 질문인 것처럼 다들 질문에 맞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서 진행자 승짱님은 질문이 주인을 찾아갔다고 하셨지요.
아이스 브레이킹 후, 무심결의 아웃팅, 강제 음주/육식 권유, 나이/학벌주의, 외모/장애 비하, 성폭력 조장 문화 방지를 위해 적분님이 준비하신 4컷 만화를 신입회원들이 역할극 형식으로 읽었어요. 어쩜 그림도 잘 그리시고, 연기도 잘하시는지… 상담소에는 매력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는, 꼬마님께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상담소 역사를 소개해주셨어요. 영상도, PPT도 모두 몰입해서 봤어요. 한국 사회 첫 레즈비언 독자조직으로서 올해 25주년을 맞는 상담소의 지난날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 여성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보고 들은 것들이 종횡으로 엮여서 정리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특히 영상을 보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던 과거 초창기에 대사회 커밍아웃을 하고 여성 이반 권리 운동을 한 분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진지하게 전달하는 꼬마님의 모습에서도요. 아, 나중에 퀴즈가 있고, 정답자에게는 상품을 준다고 하시면서 시험을 앞둔 선생님처럼 이거 중요하다고 강조해주시는 것도 재밌었어요.
쉬는 시간을 가진 후에, 마틴 셀리그만의 나의 강점 찾기 테스트를 했어요. 테스트 결과에 따라 <시작은 책 읽기>, <벽장 이반 자조 모임>, <또다른세상 선집 출간>, <‘슬슬 나서 볼까’ 운동 소모임>, <레즈비언 전 생애 자긍심 강화 강좌 “걱정 말아요, 레즈비언(으로 잘 살 수 있어요)”> 등의 상담소 활동에 적성 매칭이 되었어요. 각자 결과 발표를 하면서 그에 따른 모임/활동 소개도 있었고요.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또 상담소 모임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상담소 역사 및 모임 소개로 구성된 퀴즈 타임이 있었고, 승짱님이 준비한 세계 과자 선물을 상품으로 받으며, 과자별 원산지의 성소수자 인권 현황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등하고 안전한 상담소를 만들기 위해 회원들이 지켜야 할 <우리의 약속문>을 함께 읽고 서약했어요. 약속문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고요.
OT 후에 격주 토요일 운동 소모임 <슬슬 나서 볼까?>의 첫 모임이 있었고, 앞으로 모임을 어떻게 꾸려나갔으면 좋겠는지 이야기 나눴어요. 아직 첫 운동을 함께 하진 않았지만, 매일 개인 운동을 공유하며 격려하고, 서로 일상도 나누고 있어요. 또,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점점 자기 몸을 잘 쓰게 되는 놀라움을 서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런 게 커뮤니티(공동체, 버팀목, 안식처)지!’ 하고 느끼고 있어요. 같이 운동해요!
소모임 후, 맛있는 음식 먹으며 더 진솔한 이야기와 큰 웃음 나눌 수 있었던 신입 OT 전체 뒤풀이까지 정말 즐거웠습니다. 준비하신 분들, 함께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 제제
4. 반제님의 후기
그날 저는 다른 회원분들보다 늦게 상담소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내내 걸음이 급했고 아침부터 먼 길을 떠나와 지친 상태였습니다. 활동가분을 만났는데, 늦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얼굴에서 긴장과 불안을 숨기기가 힘들었습니다. 건물로 들어섰고 활동가분이 먼저 계단을 내려가 문의 비밀번호를 눌렀습니다. 그분도 저와 초면이라 어색했는지 실수로 번호를 한번 틀렸고, 다시 문을 여는 동안 저는 뒤에 서서 건물 내부를 쳐다보았습니다. 철제 난간과 조용한 계단들, 내려가야 보이는 문. 비밀스러운 입구. 첫 만남.
회원분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다들 웃어주었습니다. 저는 적응하기까지 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곳의 흐름과 농담이 이해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소개하는 걸 싫어해서 이때까지 많은 첫 만남을 거절해왔습니다. 나를 소개하는 마땅한 말을 찾을 수 없어서 대충 이름과 직업만 얘기하고 차례를 넘기기 일쑤였는데, 그날은 꽤 담담하게 입을 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질문을 뽑아서 거기에 답하는 형식이라 편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 이야기를 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들어줘서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강점 찾기도 좋았고 소모임에 관해 떠드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별 대화가 없어도, 눈을 맞추고 분위기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제 비밀을 지켜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나누어 마시며 작은 방에 모여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날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생각들을 잊고 자주 웃었습니다. 과자와 초콜릿을 먹었고 떡볶이도 맛있었습니다. 여자들과 있으면 떠오르는 생각도 많고 공감되는 것도 많고, 별말 없이도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데 그런 감정들이 좋았습니다.
저는 또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이 멀었기에 먼저 일어났습니다. 활동가분들이 역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이만하면 되었으니 오늘은 헤어지고 싶었습니다. 잘 가 하고 또 보고 싶었습니다. 인사를 했는데 역시 웃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편안하게 해줘서, 뒤돌아보는 일 없이 집으로 가게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후기를 남깁니다.
– 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