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1 통계,사례,칼럼 연재] (5) 상담사례4: 성폭력

대표 상담 사례 5. 성폭력

 

각색 내담글

 

저는 사교성도 괜찮고 사람도 참 좋아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연애는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는 삼십대 초반의 여자입니다. 특별히 동성애자다 뭐다 정체화를 했다기보다는 동성이건 여성이건 열어둔 상태로 살아왔고요. 그렇지만 남자보다는 여자가 좋은 게 사실이고 앞으로는 그런 저 자신에 대해 긍정하고 싶은 상태입니다. 정체성 자체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그렇습니다.

 

지금 사귀고 싶은 사람도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옛 기억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 내딛기가 몹시 힘듭니다. 오래전 여자를 잠깐 만났는데 그 관계가 정말 불행했습니다. 동성 간 성폭력이라 할 만한 상황도 있었고요.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저와 그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고 믿었지만, 상대방은 애초부터 그조차 아니었습니다. 첫 성관계도 저는 싫다는데 강제로 밀어붙이며 네가 이걸 사랑이라 생각한다면 자기를 만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게 정말 싫었습니다. 그 뒤로도 아무 때나 하려 하고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자기는 잠자리에서의 취향이 뚜렷하므로 (아마도 펨/부치 얘기 아니었나 합니다) 여자 역할에 충실할 상대(표현에 쓰이는 단어가 끔찍했습니다)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은 저와는 더 이상 사귈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관계는 끝났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저를 그냥 한 번 건드려 본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비참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오랫동안 힘들어 해 왔습니다. 커뮤니티가 워낙 좁다보니 맘 편히 욕을 하고 돌아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리라 생각한 면도 물론 있습니다. 차라리 상대가 남자였다면, 남자에게 당한 거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가하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좀 개념이 잡혀 있었으니까요. 

 

그런 일을 겪었고 그로부터 아직 회복이 안 된 상태라서인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여전히 여성과 친밀한 상태가 되는 것이 많이 두렵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글

 

마음에 드는 동성 상대와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모색해 보고 싶은 지금, 여전히 아물지 않은 옛 관계로부터의 상처와 고통을 살피는 중이십니다. 성폭력으로 점철된 관계였다 기억하십니다. 여자와의 일이다 보니 말로 풀어내고 도움을 요청하기가 더욱 어려우셨다고 털어놓으셨고요. 여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처음으로 경험한 방식이 그처럼 폭력적이었다보니 다시 여자를 만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힘든 기억을 잘 다루어 나가며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마련하시는 과정을 돕고 싶습니다.

 

자기를 긍정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지지

 

먼저 당신의 자존감과 자기 긍정의 의지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냅니다. 본인이 어떤 쪽으로 더 끌리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 검열없이 표현하는 데서 당신의 당당함을 봅니다. 자기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읽고 그걸 스스로 소중하게 품어낼 줄 아는 따뜻한 기운을 전해 받습니다. 

 

이성보다는 동성의 상대에게 더 끌리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일은 참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감정과 욕망을 마음껏 탐색하도록 해 줄 사회적 자원부터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동성에 대한 이끌림이나 동성 교제란 참 낯설고 이상하고 그래서 싫은 무언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동성의 상대를 향한 특별한 애틋함을 직접 경험하는 이들 역시 이와 같은 편견을 자기 안에서 완전히 걷어내긴 어렵죠. 서글프고 아픈 자기 검열이 그래서 시작됩니다. 자괴감과 죄의식으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자기 긍정으로 가는 이와 같은 걸림돌들을 치우거나 넘으며 여기까지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좋은 마음, 그리고 한 여자에게 갖게 된 호감을 모두 투명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용기가 무척 멋집니다. 그 용기가 당신이 앞으로 헤쳐갈 치유의 과정 또한 지탱해 줄 수 있으리라 예상해 봅니다.

 

성폭력 피해를 직면하는 용기에 대한 격려

 

상담원이 당신에게서 느낀 건 동성에게 끌린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용기 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쩌면 가장 잊고 싶을 괴로운 경험 또한 마주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오직 혼자서 감당해 왔으면서도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상대로부터 성적으로 정신적으로 이용당했다.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기억을 곱씹어 오셨습니다. 상담소를 찾아 고민을 나누는 일도 그러한 직면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피해 사실을 고스란히 직면하기에 그 경험으로부터 좀 더 튼튼해지고 싶다고 바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피해 경험을 묻고 넘기기보다는 똑바로 보고 헤쳐나가는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러 이처럼 처음 폭력의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까지 그간 얼마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웠을지 채 다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당신이 과거의 그 폭력적인 관계로부터 느끼는 불쾌함, 부당함, 치욕스러움, 비참함, 그리고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바로 당신이 지닌 자존감과 자긍심을 보여준다는 사실, 즉,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충분히 소중히 여길 줄 안다는 증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누군가가 좋아져버린 지금 예전과 같은 상황이 또 생길까 우려하며 조심스러워 하는 마음도,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일 터입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이 지닌 치유의 역량입니다. ‘발목이 잡혀’ 과거에 머물고만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뭐든지 내가 감당 가능한 만큼만 해 나가면 됩니다. 

 

가해자가 여성이었기에 기존에 당신이 익히 알고 있던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 구도의 성폭력 개념으로는 본인이 겪은 일을 해석하기가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분명히 끔찍한 일을 당하였고 그로 인해 분노와 아픔이 깊은데 그 일을 마땅히 이름 붙일 방법이 없다. 이름 붙여지지 않는 일들은 안타깝게도 아주 손쉽게 없었던 일이 되고는 합니다. 그런 만큼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지 알 수 없던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은 많이 암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통은 있는데 그 고통을 만든 사건은 명명조차 되기 어려운 상황, 그건 결국 고통마저 가려버리기 쉬우니까요. 

 

당신은 또한 당신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지를 어려워 했던 만큼이나 남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도 몹시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나도 제대로 해석이 안 되는데 남들이 과연 이해할 것인가. 여자가 여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납득이 될 것인가. 여자와 여자 사이에 성을 매개로 한 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질적인 가능성으로 여겨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난 성폭력을 언어화 하는 작업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꼭 이와 같은 표현으로는 아니더라도 대략 이러한 내용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과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반 커뮤니티에서는 커뮤니티에서대로 섣부르게 말을 꺼냈다가 혹여 내분을 조장하는 사람 혹은 괜한 일 들추어서 이반들 얼굴에 먹칠하는 사람 등으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 간의 성관계나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일반 지인들에게는 애초에 말을 꺼낼 생각 자체를 하기가 어려웠을 터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여성 간의 성폭력을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접하게 될까 두려우니까요. 동성 간 성관계와 성폭력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동성 간 성관계는 비정상적인 것이고 그러므로 그 자체가 폭력이라는 식의 몰이해와 마주하게 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우리 지금 여기서 같이 당신이 겪은 일에 이름을 붙여 보면 어떨까요.

 

당신은 이미 “동성 간 성폭력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있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게 부를 만한 상황이 맞습니다. 당신이 예전 관계에서 겪은 일련의 학대와 폭력은 당신의 동성 파트너가 당신에게 가한 성폭력이 맞습니다. 그 사람과 당신의 관계에서 동성 간 성폭력이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과 성별이 같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여자라고 해서 결코 당신이 입은 피해가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피해는 당신이 느끼는 무게만큼, 꼭 그만큼 무겁습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성폭력이란 이른바 남성 성기의 삽입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물리적 우위라는 요소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성을 매개로 행사하는 모든 폭력이 성폭력입니다. 내가 싫은데도 상대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성관계에 응해야 했다면 그건 성폭력적 상황입니다. 사랑했든 안 했든, 정식 교제였든 아니든, 성관계의 시작 자체에 동의했든 안 했든, 어떤 순간 어떤 행위를 거절했을 때 그걸 강제당했다면 그 역시도 성폭력적 상황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나 성정체성은 성폭력의 결정적인 성립 요소가 아닙니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양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에서도, 양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에서도,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사이에서도 동성 간 성폭력은 일어납니다. 남성 간에도 여성 간에도 동성 간 성폭력은 일어납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일이, 당신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에는 타인이 당신에게 행사한 폭력, 즉, 가해 행위라는 원인이 존재함을 명시함으로써 당신 고통의 실체를 더욱 잘 존중하는 작업이었으면 합니다. 

 

치유 과정을 위한 도움말

 

당신은 당신이 겪은 일을 이제 명명백백하게 성폭력 피해로 규정하였습니다. 당신의 고통에 구체적인 실체를 부여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도 잘 버텨 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자신감을 많이 갖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피해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해 나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선은 피해 경험을 이처럼 말로 꺼내어 놓고 상담원과 나누는 경험이 당신을 조금이나마 홀가분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 왔던 일을 말/글로 풀고, 그걸 타인과 나누는 경험이란 그 비밀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외로움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되곤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해 온 경험이 더 이상 어둠 속에 머물지 않고 빛을 받아 새롭게 조명되고 이제 그걸 같이 들여다 보아 주는 지지자가 당신 곁에 함께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을 스스로 해 내셨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돕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온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옛 관계에서 겪은 폭력이 당신이라는 존재의 귀중함을 조금이라도 약화시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든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당신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지만 그 피해는 가해자가 저지른 잘못의 증거일 따름입니다. 당신이 입은 폭력 피해의 결과로 당신이 예전보다 덜 의미있는 존재가 되거나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어 버리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라도 예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지는 마세요. 성폭력이 일어나고 지속된 것, 관계의 종료 후 오래도록 트라우마에 시달려 오신 것, 모두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가해자의 잘못 때문입니다. 혹여라도 나 자신이 못마땅해지거나 미울 때면 이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이처럼 상담소를 찾아 피해 경험에 대한 말문을 트셨으니, 그간 혼자 끌어안고 있어야만 했을 무수한 이야기의 타래를 꾸준히 풀어가시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상담소와 함께 이야기 해 나가셔도 좋고, 피해 경험의 치유에 심리 상담으로 접근하는 상담가를 만나 같이 작업해 나가셔도 좋겠습니다. 누구와든 어떤 기관에서든, 용기 내어 꺼내신 경험 다시 속으로 집어 넣지 않고 하나하나 짚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피해 경험과 관련된 숱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과거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되 그것에 갇히지 않고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훈련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추천해 드리고 싶은 심리 상담 기관의 정보입니다.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

홈페이지 | http://traumahealingcenter.org

전화번호 | (02) 747-1210

 

홈페이지를 둘러 보시면 금세 알게 되시겠지만,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람.마음은 성적지향, 성정체성, 성별정체성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기존 사회의 편견과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당사자의 입장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상담하는 기관입니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심리 상담 기관으로 저희 상담소의 신뢰를 담아 소개해 드립니다.

 

새로운 관계 맺기를 위한 제안

 

앞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겁내는 당신의 마음은 어쩌면 자기 보호를 위한 당연한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이미 했습니다. 그래요. 두려움이 솟아날 땐 두려운 만큼 두려워 하고, 걱정이 생길 때는 걱정을 하는 편이 좋습니다. 두려운데도 애써 무릅쓰려 하거나 걱정이 태산인데도 억지로 그 걱정을 묻어두려 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두려운 까닭, 걱정의 근원을 상세히 살피는 작업에 보다 정성을 들여 실질적으로 두려움과 걱정을 줄여 나가는 쪽이 나은 방향일 터입니다.

 

여자와의 친밀한 관계가 두렵다고 할 때, 당신의 두려움과 걱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요. 상담원은 크게 두 갈래로 당신의 두려움과 걱정을 짐작해 봅니다. 

 

하나는 상대방에 대한 것입니다. 새롭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상대방이 예전에 나를 괴롭힌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나. 지금은 좋지만 막상 관계로 진입하면 나를 막 대하는 게 아닐까. 한 번 사람 잘못 본 내가 또 잘못 보지 말란 법은 없잖은가. 

 

또 하나는 당신 본인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이며 걱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상대가 만일 또 나쁜 사람이라면 나는 예전보다 더 잘 요령있게 관계를 종료할 수 있을 것인가. 상대는 예전의 그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은 사람인데도 내가 지레 겁을 먹고 의심하고 밀어내 버리면 어떻게 하나. 점차 더 친밀해지는 과정에서의 제스처 하나하나가 부담스럽고 어렵게만 다가오면 어떻게 하나. 

 

이와 같은 두려움과 걱정은 당신이 여자와의 첫 번째 (교제 아닌) 교제로부터 긍정적으로 참조할 만한 경험을 하지 못하였기에 더욱 크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동성과의 교제에서 긍정적이고 비폭력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의 모델이 아직 당신의 경험 속에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동성과의 첫 교제가 안긴 부정적인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현재의 관계, 새로운 관계마저 자꾸 예전 관계의 영향력 아래에 두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레 걱정으로 아무것도 못 해 보기에는 당신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고 마음 가는 사람과 사귀어도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도전을 안 해 볼 수 없습니다. 일단 사람을 만나 봐야 하고, 교제를 시도해 봐야 합니다. 부딪쳐 나가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 능력도 기르고 예전 관계에서는 알 수 없었던 관계의 기쁨도 누리고 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물론 마냥 두렵기만 하고 엄두가 안 나기만 한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잠시 보류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여유를 가지고 내 상처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이 지금 눈 앞에 있다면, 그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뭔가 해 보고 싶다면, 기대감과 설레임을 두려움과 걱정보다 살짝 크게 가져 보셔도 좋겠습니다. 

 

안 그러면 가장 좋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므로 관계 속에서 학대적인 사람을 또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보는 눈이 없어서 생기는 상황이 아니라 그 사람이 타인을 존중하는 관계 맺기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미 학대적인 관계를 한 번 겪었습니다. 그런 만큼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를 지켜 보는 과정에서 위험 신호가 나타날 때 그걸 좀 더 신속하게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재빨리 알아채게 되는 만큼 대응에도 보다 요령이 생길 터이고요.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유사한 상황이 찾아왔을 때 내내 그 상황에 취약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는 역량을 구비했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관계를 모색하고 시작하고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조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조심스러운 건 당신 본인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대화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나감으로써 서로에게 좀 더 편안한 방법으로, 또, 부담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관계를 빚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서두르거나 쉽게 생각하거나 그저 자신감으로 일관하며 관계에 임하는 태도와 비교하면 조심스러운 편이 서로가 상대를 배려하는 방식의 관계맺기로 한결 나은 방법일 수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어려워 하거나 걱정하는 지점들을 함께 고민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제 관계를 모색하실 때, 혼자서만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을 때면 주저말고 저희와 고민을 나누어 주세요. 상담원과 같이 골똘히 생각하면 홀로 외롭게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피하실 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 때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 위한 적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가 시작되면, 생각만 할 때보다 오히려 매 순간 더 구체적으로 고민들을 풀어내시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치유 과정과 관계 모색의 과정 모두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치실 때마다 조력자 역할을 하리라 약속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