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현재와 다른 공간에서 현재의 사람들과 같은 의미인 사람들과 지낸 적이 있다. 가끔 눈물이 날 정도로 그때가 떠올라 목이 메이기도 하는데,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오늘의 모습을 보는 것.
나의 기본적인 모습은 과거의 사람이다. 현재는 다행이도 현재를 보면서 뛰어가고 있지만, 그 예전에 나는 항상 뒤를 돌아보며 걷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이 넘어지기도 많이 부딪치고는 했었다. 그때마다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내 상처를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앞을 보지 않는 나를 질타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쳐도 혼자 일어서 앞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진정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넘어져도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넘어져도 혼자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어찌되었든 조금은 자랐고, 조금은 혼자 설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아직도 넘어지면 생각나는 사람은 그때 그 사람들. 넘어질 때마다 항상 속으로 ‘언니’를 외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언니가 화를 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제는 다들 너무 바빠서 전화 한 통이라도 해서 푸념 놓기에 미안해진 사람들.
지금 이 나이가 되면, 언니들과 편히 술도 먹으러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각자의 생활로 너무 바빠져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들.
언제야 그때 그 사람들이 다 모인 장소에 갈 수 있을까.
지금은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그립다.
그리고 더불어 드는 생각은,
이 장소, 이 사람들, 이 느낌,
나중에 내 목을 메이게 하지 않고
그냥 계속 이대로 있어주었으면.
– 나해경,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