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여성 성소수자를 위한 마음치유 프로젝트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1부 ‘서로의 지지자 되기’ 를 진행하였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해주신 늘보님의 생생한 후기를 전달드립니다.
작년 너무 무리한 탓에 건강도 해치고 모든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졌었다. 그래서 올해는 많이 쉬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올해 상반기는 정말 한가했다. 덕분에 내가 관계에서 겉도는 느낌이 꼭 바빠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보게 된 ‘서로의 지지자 되기’라는 1부 제목은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주변에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친구/동료들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지, 나는 그들에게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는지, 나는 나 스스로를 지지하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나를/타인을 지지하게 되는 것인지.. 등등.. 궁금증도 생겼다. 6회차로 진행된다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지지자를 만들 수 있을지, 명상·타로는 지지하는 마음과 무슨 상관인지.. 등등.. 아무튼 또 바빠질 날들을 생각하며 내가 나를 지지한다는 마음/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청해보기로 했고, 신청한 후에는 선정되지 않을까봐 살짝 조바심까지 생겼었다. ‘서로의 지지자 되기’는 명상, 타로, 비폭력대화, 그림그리기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전반적으로 내 상태, 내 생각, 내 감정, 내 욕구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성격이나 직업,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감정이나 욕구에 대해 (어쩌면 의도적으로) 깊게 생각하거나 표현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낯설고 어려웠던 것 같다. 내 감정, 욕구를 알아채는 것도 힘든데, 심지어 남들 앞에서 얘기도 해야 한다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첫 모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단 다같이 읽고 시작하는 약속문이 마음에 들었고. 키워드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나이/직업/배경 등을 어디까지 얘기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어렵지 않기도 했다. 또, ‘편견이 담긴 말들’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부끄럽지만) 나도 몰랐던 나의 편견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어서 새로웠다. 그 외 명상, 여성주의 타로 등 처음 접해보는 것들도 신기했고, 예전에 다른 관계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비폭력대화도 유익했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생각을 듣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모두 한 마디씩 해야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모두 발언하지 못하는 때에는 듣지 못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정체성 확립은 남들보다 다소 늦었지만, 그 이후로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할 때 외에는 내가 레즈비언인게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생각했고, 레즈비언이어서 좋다라는 마음은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스스로가 레즈비언인 것이 중요하며 좋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생각만큼 가까워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주신 상담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