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4명은 1월 18일부터 20일, 2박 3일간 [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 다녀왔습니다.
대회 일정 중,
<열쇠말로 풀어보는 인권운동 발제문>에서 “레즈비언을 향한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___가 필요하다.”는 주제로 활동가 김윤서이님이 발제를 하셨습니다.
<주제마당>에서 “레즈비언 삶 속으로 고고!(go go!)”는 활동가 김김찬영님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 아래 글은 “주제마당”과 “열쇠말로 풀어보는 인권운동 발제문”의 상담소 기고 자료입니다.
5회 인권활동가대회
주제마당(주제별 워크샵) 1월 19일(금) 둘째날 오전 9시 – 12시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레즈비언 삶 속으로 고고!(go go!)”
■ 기획 취지
커밍아웃과 아우팅의 문제, 가족구성권 보장의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 등등 굵직한 레즈비언 권리 이슈들은, 사실 레즈비언이 실제 삶 속에서 겪는 수없이 많은 고민들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레즈비언 권리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지만, 레즈비언 인권 감수성을 갖기 위해서는 실제 레즈비언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이에 레즈비언이 삶 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민들과 레즈비언이 꾸는 다양한 꿈들을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역지사지 그리고 공감하기! 이제 레즈비언 삶 속으로 함께 떠나 보아요. 고고!(go go)!
■ 프로그램
1. 일상 뒤집어 보기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성애자의 아주 평범한 일상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일상의 주체를 이성애자에서 레즈비언으로 바꾸어 본다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상대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경험을 나누어 보아요.
2. 열쇠 말별 레즈비언 고민과 바람 이해
다양하고 일관성 없는(응?) 열쇠 말들이 주어집니다. 가족, 친구, 선물, 부담, 휴대폰, 칼, 학교, 직장, (길)거리. 이 열쇠 말들에서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레즈비언의 고민과 꿈들을 적어보고, 나누어 봅시다!
연대마당② 열쇠말로 풀어 보는 인권 운동 [차별 부문]
‘레즈비언을 향한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 ]가 필요하다’
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1.
레즈비언을 향한 차별을 막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동성애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미묘한 두려움에서부터 적나라한 혐오감까지가 모두 사라져야 하며, 여자가 여자다워야 여자라는 우리 사회의 고정 관념과 편견이 남김없이 제거되어야 하고, 그러한 변화가 법제도 상의 권리 보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 해소의 과정 속에는 위와 같이 뭉뚱그려 말해 갖고서는 도무지 다 드러낼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과 걸림돌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레즈비언을 향한 차별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어려움과 걸림돌들을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레즈비언에 대한 차별을 ‘막는다’는 표현은 사실 좀 부적당한 느낌을 준다. 어쩐지, 존재하는 차별을 그대로 둔 채 그것이 레즈비언에 대해 직접 가해지는 것만 ‘막으면’ 된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레즈비언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라기보다, 이제까지 침해받아 온 레즈비언 권리의 보장을 위한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이렇게 하면, 레즈비언의 입장에서 보다 주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표현 차이에 불과하다 생각할는지 몰라도, 사소한 표현 하나가 커다란 틀에서의 의미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분명,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는 말은 차별을 막아야 한다, 는 말보다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데 부당하게 침해당한 권리’,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되찾아야 하는 권리’란 의미를 더욱 또렷이 담고 있다.
2.
2007년 현재, 한국 사회의 레즈비언들은 자기 정체성을 비관하는 가운데 섭식 장애와 자살 충동을 동반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연령 불문), 더 이상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기도 하고(십대 이반 및 이십대 초반의 레즈비언 위주), 이성과의 원치 않는 결혼을 강제 당한다(소위 결혼 적령기의 레즈비언).
또한, 이반 바 입구의 공간에서 바깥바람을 쏘이다가 지나가던 취객들로부터 이유 없이 뭇매를 맞고(연령 불문), 수십 년을 같이 살아 온 사람과의 관계를 청산하면서도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위자료마저 청구하지 못하며(4,50대 레즈비언의 사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로부터 불이익을 입지 않을까 두려워 강간 피해조차 신고하지 못하는(연령 불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오래 된 일이다. 다만, 근 십여 년 간 레즈비언 권리 운동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면서 이전에는 아예 드러나지도 못했던 사건 사고들이 표면화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레즈비언이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그 권리를 침해받는 상황이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워낙 너무나 지독할 정도로 이 사회 속속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 방식과 제도에 배일대로 배인 편견은 그리 쉽사리 걷히지 않는다.
불과 이십 년 전까지 만해도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레즈비언의 ‘ㄹ’ 자 조차 잘 몰랐다. 동성의 상대를 좋아하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잘못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했던 당사자들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 동성애자란 존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이 사회에 있지만 없는, 기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자기 주변의 누군가가, 혹은 자기 자신이, 설마 동성애자일 줄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 동성애자의 존재가 완전히 부정당하던 오랜 세월이었다. 사람들은 동성애자를 노골적으로 혐오하고 배척하기에 앞서 아예 혐오하고 배척할 대상을 떠올리지 조차 못했다.
그에 비해 이제 동성애자 그리고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싫든 좋든 적어도 ‘그렇구나, 동성애자란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인식 정도는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운동의 성과와 사회의 변화로 동성애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되면서 그 부정적인 효과가 동시에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들의 취약한 상황을 매개로 한 범죄들이 증가한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이렇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모습만 바꾸어 새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레즈비언들의 사정은 어떨까. 우리들은 이십 년, 삼십 년 전의 ‘레즈비언이라는 이름도 갖지 못한’ 레즈비언들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자기 자신을 쉽사리 긍정하지 못한다. 그와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노골화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및 혐오 범죄에 언제나 노출돼 있기도 하다.
가령,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아우팅을 빌미로 하여 각종 사기와 폭행을 저지르는 자들의 경우를 보면, 차별이 점차 해소되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그 권리 침해의 방식이 더 정교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다. 레즈비언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비혼자라는 이유로, 별나고 이상하고 그래서 흥미로운 존재로서 쉽게 선정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3.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는 우리의 외침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친절하고 매력적인 게이 친구에 대해 숱한 젊은 층 여성들이 판타지를 키우고 있는 추세이며,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내세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공수해 방영하는 유선 티비와 케이블 티비는 물론, 공중파 드라마에서도 동성애와 관련된 화제를 제법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데다가, <왕의 남자>나 <브로크백 마운틴>과 같은 게이가 등장하는 흥행작들이 호평을 받고 있는데 이 와중에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남아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그러나 대답은 ‘그렇다’ 일 수밖에 없다. 소위 게이 친구, 게이 패션, 게이 문화 등을 아우르는 ‘게이 코드’가 대중적으로 상당한 사회적 붐을 일으키면서, 오히려 동성애자들이 매일 매일 부딪쳐 나가야 하는 갑갑하고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관심과 그러한 억압적인 현실의 개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는 측면마저 있다. 모두가 산적해 있는 인권 침해 문제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릴 때, 그 관심을 다시 끌어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또한 ‘게이’에 대해서는 굉장히 친숙한 태도로 언급하고 반응하면서도 ‘레즈비언’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동성애자에 대한 이미지가 게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물론 게이가 또 다른 편견을 토대로 형성된 단일한 게이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기 쉽다는 문제도 크다. 그러나 이 때 레즈비언의 입장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기존 흐름 속에 담겨 있는, 여성을 아예 무성적인 존재로 여기는 시각 및 마치 여성은 관계나 욕구의 주체가 아니라는 듯한 시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레즈비언의 권리 보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레즈비언들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의 구체적인 면면들을 파악하는 데 보다 공을 더 많이 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떤 차별과 폭력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활동 과제를 뽑아 내고 그것을 실천할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실태 조사 자료를 토대로 해야만 운동의 실내용이 탄탄하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면, 교육 현장에서의 이성애주의, 레즈비언의 가족 구성권, 빈곤과 레즈비언 정체성의 상관 관계 등의 주제들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주제만 놓고 봐도 영역별로 많은 논의들이 가능한 주제들이다. 이와는 또 다르게, 10대, 20대, 20대, 40대 하는 식으로 대상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이 역시 연령대별 특성을 고려한 연구로 어느 특정 연령대의 경험에 치우친 활동을 지양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연구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여, 혐오 범죄 피해 경험이나 노동 과정에서의 받은 차별 경험 등에 대한 연구 등까지 실태 조사 범위를 확장시킨다면 가장 정확히 현실에 기초를 둔 운동을 벌여나가는 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실태 조사는 너무나 당연히도 레즈비언 권리 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주요 과제이면서, 그와 동시에 여성단체,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청소년단체 및 쉼터 및 각급 교육 기관 등이 함께 그 부담을 나눠져야 하는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레즈비언의 권리 문제가 레즈비언 단체만의 관심사로 머무른다면 이는 레즈비언을 다시금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왜냐하면 레즈비언의 문제는 동성애자 권리 문제이면서 여성 문제임을 넘어, 모든 연령대에 걸쳐 있는 삶 전반의 여러 요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권리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우리와 함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심이 없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가져 주기를 소망해 본다. 확실히, 레즈비언 권리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레즈비언 권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최소한, 레즈비언이 겪는 경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고 그로부터 과제를 도출해 내며 차근차근 문제점들을 짚어 나가는 끈기와 노력이 필수적이리라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