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면 선고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광장의 구호와 노래, 손에 쥔 응원봉, 추위를 함께 견디게 해준 핫팩과 간식, 그리고 서로의 존재가 우리를 버티게 했습니다. 마침내 광화문 광장, 집, 직장 등 서로 다른 공간에서—따로 또 함께—“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말을 듣던 그 순간은,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예요. 이번 편에서는 파면을 기다리던 길고 추웠던 시간, 파면 선고의 짜릿했던 순간, 그리고 그 이후 우리가 함께 그려나갈 사회까지 담아보았습니다.

사진 1. 우연 제공. 광장에서 언제나 함께한 깃발들이 우리의 일상에도 늘 함께이길.
Q5. 집회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권: 남태령에서 상황을 유투브로 새벽까지 지켜보던 때. 경찰이 여자들을 봉쇄해서 얼어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루니: 탄핵 반대 집회 사람들의 혐오적인 문구가 적힌 슬로건을 스쳐지나가면서 보았을 때…
소연: 3월 8일 여성의날, 윤석열이 구속 취소되었던 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솔직히 그때쯤엔 곧 파면선고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거든요. 탄핵은 이제 기정사실화되었고, 평등사회 건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할 때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여성의날 구속 취소라니. 비상계엄 선포 당시보다 더 좌절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앞으로 함께 나아갈 목표가 있었다면, 이젠 점점 뭘 해야할지 모르겠고, 정말 탄핵이 이루어질지 모르겠고, 이렇게 매일매일 거의 광장으로 출퇴근하면서 가슴 졸이며 뉴스를 새로고침하고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삶을 지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날은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이 단식 농성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어요. 저녁 본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서 무대 앞에 잠깐 앉아있었거든요. 그때 응원봉을 든 한 여성분께서 간식을 나눠주셨던 기억이 나요.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덕분에 그 몇 달의 시간을 버텼던 것 같기도 해요.

사진 2. 소연 제공. 윤석열 구속 취소 후 저녁 집회에서 한 시민에게 받은 간식.
Q6. 파면 선고 당시 무엇을 하셨나요?
김권: 여자친구와 광주 집에서 손을 잡고 같이 거실에 누워 파면 선고 생방송을 봤습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끝까지 봤어요. 파면은 당연하지만 파면 이후가 더 걱정되었습니다.
우연: 집에서 혼자 생방송으로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선고방송을 보기 전에는 파면이 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는데, 선고를 하는 문형배 재판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파면선고를 할 거라는 확신이 점점 생겨서 너무 기대되었어요. 파면한다는 선고를 듣고는 너무나 안심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어쩌지, 파면이 안 되고 또 계엄을 선포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사라져서요.
루니: 그때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너무 지쳐있었어요 ㅠㅠ소연: 아침 일찍 무지개행동 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광화문에 나와있었어요. 그땐 이미 기분이 너무 좋았을 때라, 이렇게 사진이 많이 찍힐 줄 알았다면 화장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다 하고 농담도 하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광장에 많이 나올까 생각도 들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더라고요. 상담소 회원분들하고도 많이 만나서 반가운 인사 나누고 그랬어요. 파면선고가 시작되면서 정말 마음을 졸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속시원한 판결문이 나오더라고요. 파면선고가 끝난 후, 저는 사실 울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 동료들이 울기 시작하니 저도 덩달아 눈물이 나왔던 거 같아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노래가 파면선고 후 곧장 울려퍼지기 시작했는데, 광장에서 자주 나왔던 노래였잖아요. 그래서 지난 네 달 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정말로 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다는 생각, 지금 내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이 순간을 만들어왔다는 생각에 정말 벅찼어요.

사진 3. 소연 제공. 쓰레기도 윤석열도 없는 집회 날 만들었던 피켓.
Q7.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나요?
김권: 계엄이 절대 용납되지 않는 세상, 계엄에 저항한 여성들이 잊히지 않는 세상, 계엄 이전에도 당시에도 이후에도 계속 상시적 계엄 상태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생존을 넘어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
루니: 성소수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의 당연한 권리가 당연하게 보장되면 좋겠어요. 정부 차원에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비건 실천, 친환경적 물건 구입 등을 일상에서 쉽게 할 수 환경이면 좋겠어요. 서로를 혐오하는 화살을 거두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포용적인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우연: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누구나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
소연: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 성차별과 성폭력이 뿌리 뽑힌 사회. 적어도 우리가 광장에서 나누었던 약속과 원칙, 의제들이 잊히지 않는 사회.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갈 힘을 가졌음을 우리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난 2017년의 대선 때처럼 말로만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지 말고, 진정으로 성평등 정책을 공약하고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광장의 요구를 잊지 않는 대통령이 탄생하면 좋겠어요.

사진 4. 소연 제공. 4월 22일 방영된 PD 수첩의 한 장면. 일상 속에서도 무지개가 눈에 띄길.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어느새 여름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가 만든 윤석열 없는 세상은 도착했지만, 우리가 만들 평등한 사회는 아직 길 위에 있지요. 여전히 우리는 일상 속에서 퀴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고, 존재를 설명해야 해요. 계엄에 저항한 여성들이 잊히지 않기를, 혐오와 차별에 맞선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무지개 깃발이 광장에서만 환영받는 상징이 아니라, 어디서든 당연해지기를—그래서 우리가 함께했던 광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내일은 대선 본투표일입니다. 우리가 광장에서 함께 만들었던 마음과 문장들이, 계절을 건너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윤석열 없는 세상을 만들었던 그 힘이, 이제는 한국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을 잊지 말고, 그 꿈이 실현될 때까지—언제나 함께해요,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