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11.25 2025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 루니 발언

안녕하십니까. 저는 부천새시대여성회 그리고 경기페미행동의 일원이며, 한국 레즈비언 상담소에서 활동가로 있는 남하님 (루니) 라고 합니다.

제가 겪어온 차별과 폭력은 여성으로서 겪는 고통과 그리고 성소수자로서 겪는 고통이 켜켜이 중첩되어있습니다. 저와 같은 8~90년대생들 중에서 여성들은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죽을 뻔한 고비를 한 번씩 겪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성별이 확인되면 여아라는 이유로 미처 태어나보기도 전에 낙태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명절에 친척집을 가면 거실에는 성별과 나이에 따라 세 개의 밥상이 놓여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앉아서 밥을 먹었던 여자와 아이들의 밥상에는 소불고기 국물은 있어도 건더기는 없는 접시와 무 몇조각이 둥둥 떠있는 소고기없는 소고기무국이 놓여있었습니다.

제가 수원에서 살던 학창시절에는 이반검열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성소수자임이 노출된 학생이 교무실에 불려가 자신이 알고있는 다른 성소수자 학생의 신원을 밝히도록 강요당한 것입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저는 수십 년간 누가 내 성정체성을 알기라도 할까봐 매일 숨죽이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가스라이팅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부천에서 트랜스 여성인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파트너가 트랜스젠더로서 감내해야 하는 차별과 폭력을 곁에서 바라보며, 저는 더 이상 숨죽이며 살 수만은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두렵지 않아서 여기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버텨 온 끝에 마주한 현실이 제가 참아온 시간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편견과 폭력은 더 촘촘하게, 더 무겁게 삶 위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끝없는 가난의 굴레로 삶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이 ‘각자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차별, 성적지향과 성정체성 때문에 겪는 차별, 사회적 취약성 – 이 모든 것들은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서로 겹치고 교차하며 더 큰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저와 같은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보다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도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공존하려는 마음이 모일 때 연대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저의 용기가 우리의 용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발언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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