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꿈의 집은>
🍎이끔이 채원
이 책이 작년 7월에 나왔을 때부터 너무 좋아서 회원분들과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상담소에서 계속 교제 폭력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이 책을 읽으며 우리끼리 나눌 이야기가 정말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에서는 책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누고 싶었지만, 내밀한 이야기들이 집단 상담(?)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었고, 그래서 후기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제외하고 나눴던 이야기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들을 정리해 가져왔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꿈의 집에서』 내용 요약
카르멘 마리아 마차도 작가님의 일기 같은 형식의 책입니다. 주요 인물은 ‘꿈의 집의 여자’, ‘나’, 그리고 ‘밸’로, 이 세 사람이 핵심입니다. 작가가 목차에 명시하진 않았지만, 실제로는 다섯 가지 구성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장: 사랑에 빠지는 과정. 격한 감정과 애정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요.
✔️2장: 정식 교제와 동거의 시작. 꿈의 집의 여자의 이전 연인 ‘밸’에 대한 죄책감과 성취감이 함께 언급됩니다.
✔️3장: 폭력이 본색을 드러내는 가장 괴로운 지점. ‘악령에 빙의했다’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구체적인 폭력 사례들이 나옵니다.
✔️4장: 이별의 과정. 꿈의 집의 여자가 ‘엠버’라는 새로운 사람이 생겨 헤어지게 되는데, 그 이후에도 친구로 지내자며 계속 연락을 해오는 방식으로 폭력이 이어집니다.
✔️5장: 완전한 이별 이후 남아 있는 기억들과 2차 가해에 대한 경계, 그리고 현재의 안정적인 연애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교제 폭력의 케이스 연구서처럼 매우 구체적이며, 특히 가스라이팅의 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 <가스등>을 인용하며, 가해자들은 그저 무언가를 원할 뿐 그것을 어떻게 얻을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가 때로는 힘없는 목격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함께 다룹니다.
정서적 협박, 통제와 감시, 핸드폰 검사, 낯선 곳에 버리고 가기, 폭력 이후 기억 상실을 주장하며 사과하고 연민을 유도하는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가해자는 본인의 폭력적인 아빠를 닮기 싫다고 말하며 가해의 책임을 흐리기도 하죠. 작가는 욕실이라는 피난처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그게 정말 학대였을까?”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합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정서적·심리적 학대를 보여줍니다.
🥭우리만의 경험을 아카이빙하다
타리님은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인상 깊은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데이트 폭력은 신체적 폭력이 중심이지만, 레즈비언 사이의 폭력은 죄책감을 자극하는 수동적인 공격 형태가 많다. 작가는 이런 우리의 파편화된 경험을 아카이빙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던 것 같다.”
특히 타리님의 “레즈비언 이혼 숙려 캠프가 필요하다”는 말이 가장 큰 임팩트로 남았습니다. 화제의 방송 프로그램 이혼 숙려 캠프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프로그램을 함께 보게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모두가 빵 터지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나누었어요.
“다들 완벽한 사람일 리 없잖아요. 이상한 연애 하는 거 보면서 같이 욕하는 세상이 되어야죠.”
우리도 다른 커플들과 다를 바 없이 똥밭을 구르며 살고 있지만(책 속 표현ㅎㅎ), 언젠가는 퀴어가 너무 평범해져서 그 모든 일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더 이상 숨겨지지 않은 채 가시화되어 안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요다님은 잠깐 참여해주셨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대만에서 동성결혼 법제화 이후 레즈비언 이혼율이 가장 높은데, 다들 화려하게 결혼했다가도 커뮤니티에 해를 끼칠까 봐 조용히 이혼을 선택한다는 점, 이미지에 대한 걱정보다 자신의 힘듦을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공간이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나눠주셨어요.
지예님은 책 100페이지에 등장하는 “환자분이 빼야 하는 것은 체중 47kg과 대기실에 앉아 짜증을 내고 있는 저 금발 여자입니다.”라는 문장을 언급해주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고립되는 상황이 인상 깊었다고 말씀해주셨고, 그 지점에서 모두 크게 공감했습니다. 어떤 이와 사귈 때 친한 친구의 한마디 덕분에 빠른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며, 주위 사람들의 말과 자기 힘듦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 지점까지 함께 닿을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꿈의 집
마지막으로 각자가 바라는 ‘꿈의 집’을 나눴습니다.
“여친과 고양이 두 마리가 로망이었는데, 최근엔 바뀌었다. 같은 빌라에 살되 3층 정도 떨어져 사는, ‘적당한 거리’가 있는 집.”
“저는 지금이 꿈의 집에 가깝다. 로망 없이 평안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좋다.”
“각자 지낼 수 있는 방과 그림 작업실이 있는 집! 현실적으로는 방이 여러 개여야 한다.”
“텃밭이 300평 정도 있고 고양이와 파트너가 있는 집. 퀴어 친구들이 곁에 있어 누가 나를 해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드는 관계망 안의 집.”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한 아파트에 모여 사는 공동체. 내가 1층에 살면 친구들은 6층쯤 살면서.”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 먹고 웃을 수 있는 곳. 어디든 그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집이다.”
각자가 자신의 꿈의 집을 말할 때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멀리 울산에서, 또 네덜란드에서 줌으로 참여해주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뜻깊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수달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책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요. <꿈의 집에서>는 아주 용기있고 생생하고 치밀하게 서술된 회고록이고,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었는데요. 상담소에서 준비한 모임이기에 여성 퀴어 당사자들끼리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지 기대됐어요.
모임에서는 책 후기와 경험담을 비롯해 아우팅 위험, 퀴어에 대한 낙인 우려 등 여성간 교제폭력 발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모두가 모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끔이 채원님이 준비해준 PPT를 통해 책을 더 깊이있게 알아갈 수 있었어요. 소개받은 레퍼런스 중에 책에 언급되었던 ‘Voices carry’라는 곡! 너무 좋습니다.
그중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내가 교제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었어요. 몇몇 분들의 발언을 통해 여성퀴어들 중 교제폭력의 존재와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어떤 행동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교제폭력 피해 체크리스트를 보면 저 역시 ‘이거 나 아냐?’ 하고 헉 하는 부분이 있곤 해요. 건강하고 안전한 관계와 교제폭력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한 끗 차이이고, 누구든 언제든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모임을 끝내며 각자의 ‘꿈의 집’을 상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저는 물리적으로 깨끗하고 번듯한 집과 집 주위의 것들을 이야기했는데 한 참가자분이 “내가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으면 그곳이 꿈의 집이다”라고 하셔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울림이 컸어요. 욕망의 집보다 마음의 평화가 실현되는 그곳이 바로 꿈의 집입니다!
이 모임이 끝나고 넷플릭스 <최후통첩 : 퀴어러브 시즌2>를 시청하다가 한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에게 교제폭력 피해의 경험을 털어놓는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요. 몇 년만에 처음 그 경험에 대해 고백했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만큼 이런 경험을 안전하게 나누기 어렵다는 사실이 실감되었어요.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마음이 어려웠는데 시간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고, 이 책을 통해 찬찬히 정리해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어요. 아직 이 책을 안 읽어보신 분이 계시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