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일요일
회원 번개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연극 관람 후기
지난 7월 회원분들과 함께 대학로에서 페미니즘 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관람 후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아름다움의 강요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꼬마, 나루, 세미, 쇼어, 원영, 재키, 파인애플, 페이님 등 8명의 회원분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상담소 회원 파인애플님이 생생한 후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여성 성소수자의 삶과 관련된 영화, 연극, 낭송회 등의 다양한 회원 모임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후기 / 파인애플
재밌어서 웃으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연극이었다. 연극의 첫 장면은 배우 두 분이 서로를 향해 어색한 눈길을 던지는 것이었는데 나도 덩달아 어색함을 느끼며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하며 연극의 시작을 기다렸다.
뒤를 이어 너무나도 익숙한, 외출을 위해 여러 옷을 입어봤다 던지는 장면이 나왔다. 대사는 하나도 없었지만 생각이 그대로 들리는 듯했다. 아 이 바지 너무 끼는데, 아 이 웃옷은 색이 잘 안받네, 아 이건 모양이 좀 별로인데… 왜냐면 연극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살면서 수도 없이 겪었던, 그래서 어느샌가 적응해서 비판하기를 잊어버린 한국사회에 깊이 내재화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외모강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뷰티 프로그램의 한 장면도 재미있었다. 화장, 색조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들… 눈썹 하나 가지고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듣다보니 오히려 눈썹이 그렇게 중요한가? 왜 그렇게 눈썹가지고 난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에서는 눈썹만 이야기 했지만 쉐딩, 아이라인, 립, 쉐도우, 파운데이션, 헤어… 사람을 수도없는 부분으로 쪼개고 평가하는 메이크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왜 외모는 여성에게만 그렇게 중요한 가치로 부과되는 것일까.
연극에서 여성의 외모가 더욱 중요한 것은 철지난 메이크업을 한 여성을 노리는 범죄자 때문이다. 여성은 그래서 피해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서로를 범죄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지적하게 되며 몸매를 가꾸고 다이어트를 하고 식사를 조절하고 이런 것들을 목적으로 하는 미용 회사가 등장하고 캠페인이 벌어지고 컨테스트가 벌어지고 사망자가 나오는 등 외모에 대한 강조는 극단까지 치닫는다.
혼자 방 안에서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부족한 부분을 찾고 살을 보면서 자연스러운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덜어야 할 것, 고쳐야 할 것, 단점으로 인식하고 과자를 보면서 먹을까 말까를 수도 없이 고민하고… 나는 연극을 보면서 도대체 왜 저렇게 해야할까를 물었다. 그건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들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왜 저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할까? 뭘 위해서?
컨테스트에서의 사고 이후 미용업계와 컨테스트의 유착, 비리, 부정부패가 보도되면서 인물들은 편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인물들은 네모난 스포트라이트 안에 서있다. 그리고 서서히 그 틀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이 장면은 자신에게 부과된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보면서 해방감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해지는 것은 조명이 켜지며 다시 외모규범이 아직도 공고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에서 범죄자가 잡히지 않은 것은 여성억압은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고 그 자를 처벌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투쟁을 통해 여성해방을 성취함으로써 끝나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