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후기] 회원 나눔: 뮤지컬 <펀홈> 관람 ④

엘리슨 벡델의 동명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펀홈>이 국내 초연되어, 상담소로도 초대권이 도착했습니다. 회원 메일을 통해 선착순으로 나누어드렸습니다. 토니어워즈 12개 부문 노미네이트 5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뮤지컬 <펀홈>의 국내 공연 후기를 소개합니다.

[COX님 후기]

뮤지컬 펀홈은 훌륭한 극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봤으면 좋겠다. 

원작은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만화 ‘펀홈’ 이다. 장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이라 장례식장 Funeral home이라고 부르는 것을 어린 남매들이 Fun home 이라고 줄여 불렀다. 

그래서 극의 주인공은 집이다. 고택을 하나하나 꾸며나가 박물관처럼 화려하게 만든 아버지가 꾸린 일생의 전부이고 딸 앨리슨 벡델이 자기 삶의 기원을 찾는 장소다. 원작에서 중년 앨리슨은 자신의 방에서 기억에 마주할 때마다 펀홈으로 돌아가 자신와 가족들의 삶을 선명하게 회상하고 샅샅이 분석한다.

집을 넘나드는 앨리슨은 총 세 명이다. 중년, 청년, 소년 앨리슨이다. 자신의 삶이 시작되고 엮이고 결국에는 탈출한 펀홈에서 세 명의 시간축이 엮여나간다. 내가 본 8월 16일 공연에선 순서대로 방진의, 이지수, 설가은 배우가 맡았다. 

방진의 배우를 보고 참 놀랐다. 한국에도 티그 노타로가 있을 수 있구나… 왜 그동안 몰랐지? 티그는 과장 없이 담백한 톤으로 굴곡있는 레즈비언으로서의 인생사를 툭툭 털어놓는 재능있는 코미디언인데, 내가 영상을 전부 찾아보고 이런저런 소식까지 따라가는 레즈비언 방송인은 티그 노타로밖에 없다. 자기를 너무 자주 많이 분석하고 들여다봐서 신경증에 말라버린 몸과 구부정한 어깨를 가지고 따뜻한 시선으로 사려깊은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언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앨리슨과 닮은 점이 많다. 방진의 배우의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다른 모습은 잘 모르지만 앞서 말한 모든 부분을 전부 연기로 표현해냈다. 펀홈은 클로짓 게이인 아버지가 주인공인 척 돌아가는 판 위에 올려두고, 사실은 그 혼란을 지켜보는 중년 앨리슨의 감정 울림이 주인공인 극이다. 두 시간여의 공연에서 단 한 씬도 빠지지 않고 늘 극 위에서 연출가처럼 팔을 괴고 다른 배우들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역할. 존재감의 정도를 아주 세밀하게 조정해야만 우습거나 방해물처럼 느껴지지 않고 관찰극의 형태를 유지하며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까다로운 역할인데, (필요이상으로 방진의 배우만 바라봤기에 확신하건대) 정말 일초도 흔들림 없이 체력에서 나오는 여유를 바탕으로 극의 기반을 잘 잡아줬다. 방진의 배우의 앞으로를 지켜보고 싶어졌다. 

이지수 배우의 어리숙한 대학생 앨리슨은 연기 같지 않았다. 당장 학교에 가면 마주칠 것 같이 생생한 사람이었다. 마냥 소심하고 어리숙해보이지만 사실은 열정이 넘쳐서 그렇고 방금 삶의 터닝포인트에 접어들었기에 가만 있어도 비져나오려는 자신을 어떻게 가눌지 몰라 이상한 짓만 번복하는 그 모습을 정말 표정이나 엉덩이나 발끝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렸다. 엉덩이는 중요하다.. 뮤지컬 펀홈의 유머는 고상하면서 그 정도를 귀여움으로 조정하는데, 청춘 앨리슨이 팬티만 입고 (연출자며 연기자며 틀에 박힌 노출과 시선을 신경쓰지 않은 채로) 억눌러 소리없이 밤의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은 그간 구린 섹스어필들이 왜곡시킨 여성의 팬티차림이 얼마나 온전한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자신답고 과장없는 엉덩이를 볼 수 있구나 생각하면 재차 감명받게 된다. 이외에도 침대에 걸터앉아 뭔가 감당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어 자신의 욕망을 끄집어내는 상대가 다가올 땐 꿈지럭 꿈지럭 옆으로 비키는 엉덩이도 있다. 너무 선연해서 낯이 다 부끄러운, 막 정체성을 깨달아 고삐도 눈치도 풀린 청년 레즈비언 연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하는지 감탄스러웠다. 

펀홈은 설가은 배우가 탁 트인 어린이의 발성으로 아빠, 나 비행기 탈래. 요구하며 시작하고 끝나는 극으로 볼 수도 있다. 앨리슨의 자기 삶의 기원을 살피는 내용의 펀홈은 어린 시절로 자꾸만 돌아간다. 청년 앨리슨에게 아빠와 인생이 산문 같았다면 소년 앨리슨에게는 시 같았다. 설가은 배우는 수수께끼의 시를 해독하는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연구자 같은 어린이를 연기한다. 이지수 배우의 부끄러움이나 방진의 배우의 물러섬과 상반되는 확고함이 좋다. 시선도 목소리도 흔들리는 것 하나 없이. 아역 배우가 성인인 주인공의 어린시절 단편만을 연기하는 성인의 모방이라면 설가은 배우는 아역배우가 아니다. 뮤지컬 펀홈의 주인공은 설가은 배우가 연기한 소년 앨리슨이고, 청년, 중년의 앨리슨들이 오히려 소년 앨리슨이 틔워낸 나머지 삶인데, 설가은 배우의 역량은 방진의, 이지수 배우의 성년들을 모두 틔우고도 남을 만큼 컸다.

이처럼 설가은 배우를 비롯해 이준용, 이윤서 배우가 연기한 앨리슨의 형제들을 포함한 아이들이 진짜 아이답게 연기한 것이 눈에 띄었다. 연출의 디렉팅이 훌륭하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우리집’ 윤가은 감독의 영화를 떠올렸다. 과한 활달함도 잔인함도 잘라내지 않은 날것의 아이들은 여기저기 튀고 끔찍한 면이 있다. 이 지점을 관찰하고 연출까지 해내는 극은 보기 쉽지 않은데, 뮤지컬 펀홈에서는 극의 중심축인 소년 앨리슨을 포함, 이 어린 앨리슨의 싫고 좋음과 남매간 우스꽝스러움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모든 방식이 아주 합당하고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이 나와서 이것저것 할 때마다 계속 소름돋아했다… 연기력도 너무 좋고 말도 안된다. Funeral Home 을 Fun Home 으로 다시 지었다며 이름에 걸맞게 신나는 노래를(여기는 펀홈~!) 만들어 부르며 관에 올라가서 춤추고 뛰어다니는 씬은 최고였다. 

이외에도 로이, 마크, 피트 등을 연기한 이주순 배우와 아버지 벡델을 연기한 성두섭 배우가 만드는 이질적인 느낌이 좋았고, 닿지 않을 듯 이어지던 긴장이 마크와 브루스 벡델이 방에서 마주하며 터지듯 센슈얼한 탈의로 이어지는 연출도 인상깊었다. 

어머니 헬렌 벡델의 류수화씨의 완급 조절도 눈에 띄었는데, 아버지의 이야기인 ‘펀홈’에서 아버지의 명백한 회피성 폭력성을 드러내는 캐릭터로서 헬렌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후속작 ‘당신 엄마 맞아?’ 로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 공연장에서 이런 걸 볼 수 있다니, 하고 놀라기도 감격스러워하기도 하면서 본 조앤과 앨리슨의 섹스 암시 장면은 비판보단 그 시도와 파격에 칭찬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한국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아주 평범한 장면이 지금 여기에서만 파격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타협과 보수성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아쉽다. 

원작 펀홈에서 레즈비언 섹스는 늘 책과 함께 한다. 레즈비언이란 여자한테 삽입하고 싶어하는 사람 아니냐는 남성적 시선과, 여성 간의 성관계란 그저 정서적 교감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편견어린 시선을 모두 부정하기 때문에 벡델식 레즈비언 섹스 표현은 탁월하다. 이 부분이 극화되며 어딘지 자우림시절 김윤아를 매우 떠오르게하는 헤테로록스타 스타일의 구원자 조앤이 나타나고 그 사람의 자석같은 성적 매력에 이끌려 침대 속으로 빠져드는 표현은 원작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조금 아쉽다. 

핀 꼽기를 거부하는 소년 앨리슨의 외침과 저항, 톰보이 여성을 본 충격 등으로 표현되듯 원작에서 여성성 수행에 대한 의문은 거듭 제기되는 주요 소재다. 앨리슨이 처음 빠져든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운동가 조앤은 원작에서 앨리슨보다도 더한 수더분한 부치, 그러니까 여성성 수행을 거부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여성운동 관련 굿즈가 가득한 조앤의 방에서 첫 레즈비언 섹스를 경험하는 앨리슨은 성적 경험에 책 읽기 등 가치관의 교환을 포함시킨다.

나는 성적 매력에 여성성 수행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레즈비언 됨에 여성성 기호를 입은 사람 선호하기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지점에서 그 어떤 레즈비언을 주제로 한 저작보다도 벡델의 펀홈을 신뢰하게 되었는데, 이게 지금 여기 한국 뮤지컬에서 조금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뮤지컬 펀홈은 지금 여기서 어려운 극의 파격을 이루었고 호의적인 관객이 이런 지점까지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믿는다.  뮤지컬 ‘펀홈’이 크게 성공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노골적인 후속작 ‘당신 엄마 맞아?’까지 이어져 진화하는 한국 대중의 인식을 반영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20년 하반기 공연이 불투명하게 되어 크게 아쉽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지금 여기의 최선을 보여준 극인 뮤지컬 펀홈은 언제 재공연되어도 후회없이 다시 볼 의사가 있을 만큼 뛰어난 극이고, 어서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