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슨 벡델의 동명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펀홈>이 국내 초연되어, 상담소로도 초대권이 도착했습니다. 회원 메일을 통해 선착순으로 나누어드렸습니다. 토니어워즈 12개 부문 노미네이트 5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뮤지컬 <펀홈>의 국내 공연 후기를 소개합니다.
*더불어 뮤지컬 <펀홈>은 8월 30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됩니다! 많은 분들이 관람해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또랑님 후기]
펀홈(Fun home)은 앨리슨 백델 가족이 운영하던 funeral home의 줄임말로, 레즈비언 앨리슨이 게이 아빠 브루스 벡델을 이해하려는 자전 만화이다. 이 만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은 43세의 앨리슨이 과거를 당시의 물건들과 일기, 그림으로 더듬어가며 자신의 상처와 아빠의 인간적 면모를 회상하며 자전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전개된다. 모든 장면에서 43세의 앨리슨은 인물들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회상하고, 어린 아이 시절의 앨리슨, 대학생 시절의 앨리슨이 겪었던 일이 교차되며 펼쳐진다.
앨리슨의 아버지 브루스 벡델의 인생은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닐 수 있다.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유인하고, 자신의 과거 제자와 성적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혼외 관계를 맺었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를 돌아보고 이해하려 하는 앨리슨의 회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를 긍정하기는 힘들더라도 최소한 인정하게 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신의 성 지향성을 숨긴 채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집을 관리하고 꾸미는 일로 자신의 정열을 숨기고, 미성년자에게 술을 권해 법정에 서게 됨으로써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래서 정신과 의사와 (아마도 전환 치료였을) 면담을 해야했다. 어린 시절부터 톰보이이면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앨리슨에게 자신을 투사했던 브루스는 앨리슨이 대학에 진학한 후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뒤흔들린다. 앨리슨은 어릴 적부터 소위 부치라고 불리는 여성의 모습에 매혹되었고, 성인이 된 후 빠르게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닫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리슨의 커밍아웃으로 그는 아빠 브루스가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브루스는 그동안 집을 강박적으로 가꾸며 평생 자신을 숨겼던 것에 회의인지 답답함인지 모를 격정적 감정의 소용돌에 빠지고는 몇 주 후 죽는다. 아버지라는 타인의 생의 흔적을 찾아나가는 것이 필연적으로 오해에 빠질 수밖에 없으나, 성인이 되어 회상하는 앨리슨이 “캡션!”을 외치며 당시의 감정, 풍경, 인물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아 나갔던 장면들은 과거를 언어화하며 자신의 역사로 쓰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였고, 이로써 자신 때문에 아빠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트라우마로부터 스스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으로 읽혔다.
만화에서 긴 호흡으로 절제된 감정으로 보여졌던 장면들이 극에서 시간의 흐름을 자유롭게 늘리고 줄이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들도 흥미로웠다. 특히 만화에서 3×4 정렬에 같은 크기의 작은 컷으로 빽빽히 양면을 채웠던 드라이브 장면이 극에서 두 명에게만 조명이 비춰지며 빠르게 대사가 이어지는 연출이 인상깊었다. 또, 브루스의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모를 죽음을 맞은 후 앨리슨이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이냐고 소리치며, 브루스가 죽기 전 앨리슨에게 일주일에 많게는 4번까지 보낸 애정 어린 편지가 교차되며 절정에 다다르는 장면은 뮤지컬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였다.
방대한 분량에 표현할 지점도 많은 자전 만화를 어떻게 현장에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2시간 분량의 뮤지컬로 각색할까 조금은 걱정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섬세하게 꾸며진 무대 장치와 인물 설정, 선택과 집중이 확실했던 극본으로 펀홈의 진가를 빼곡히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만화를 읽지 않았어도, 브루스 벡델이 정말 자살한 것인지, 그는 어떤 생을 산 인간이었는지 진실을 끝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부모를 입체적인 인간으로 이해하게 되는 일련의 드라마는 몰입력 있게 전개되고 동시에 앨리슨이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펼쳐져 서사를 충분히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극이었다. 아마도 코로나 상황 때문에 상연 기간이 단축된 점이 매우 아쉽지만, 공연 기간 동안이나마 많은 퀴어와 비퀴어가 앨리슨 벡델의 서사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