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후기] 퀴어미술이란 무엇인가1

안녕하세요. 지난 8월 22일 첫 강연 했던 <퀴어미술이란 무엇인가> 기억하시죠?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기획했던 줌 대중강의였는데요. 100분에 육박하는 신청자분들과 70-80명의 실제 참가(접속자) 수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듣기 힘든 <퀴어미술>의 계보와 정의에 대한 정은영 선생님의 열강도 너무 재미있었구요, 거의 3시간의 시간동안 자리를 뜨지않고 끝까지 질문공세를 퍼부우셨던 참가자분들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흩어지기-모이기
1강 퀴어미술이란 무엇인가 온라인 홍보 웹자보

사포의 서재 기획단이시자 열혈 참가자로 자리를 함께해준 회원 쇼어님께서 귀중한 후기를 남겨주셔서 글을 함께 공유합니다. 앞으로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흩어지기-모이기] 2차 강의를 또 열심히 준비해서 찾아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좌: 강의 준비중인 활동가들/ 우: 빼곡한 줌 접속자들과 모자이크한 강의화면

[살아가는 인간 퀴어 하나]

-회원 활동가 쇼어

평소 예술 영역에 대한 넓고 잔잔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아무래도 몰입의 기회가 없다면 가뜩이나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생활과 생업이란 미명으로 끊고말기 십상이라 책읽기나 영화감상 마저도 사치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마음으로 가장 원하는 문학, 영화, 미술같은 영역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어떤 삶일까, 어떤 관점과 방향을 가져가는 일일까,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점은 더욱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싶게 하고 들을수록 유의미해져 일상을 살아내는 크고 작은 힘과 영감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매년 새로운 기획을 빵빵 터뜨리는 사포의 서재에서 올해에도 문화특강이란 걸 마련해주셨습니다. 자칫 언/온택트 시대에 반복되는 강의 중 하나가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주무진의 심도있은 기획과 정은영 작가의 열정적인 강연 – 작가의 작품과 세계관,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실행하기’라는 명료한 제안으로 조예가 없는 저로서도 재밌고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작업하며 고민하신 지점들에 공감을 넘어 위로도 얻었는데요. 최근 몇 년 간 수많은 ‘하이픈’으로 연결된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는가, 라는 오랜 고민의 딜레마로부터 홀가분해졌습니다. 퀴어와 퀴어함, 퀴어 당사자로서 표준이 될만한 정의를 어떻게든, 명확히 설명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한편 퀴어라면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와중에 인권과 연대에 걸맞는 필수 지식과 감수성도 갖춰야 하고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힘과 돈도 보태야 하고… 인간적으로 감당할 시지프스적 바위가 보통 하나라면 퀴어는 둘 셋 이상이라 가뜩이나 밀어올리기도 버거운 마당에 저글링이 기본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어쩌면 제 문제에 불과할지 모르는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여성으로서, 이 나라에 오랜 영향을 끼친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 오랜 고민을 꼭 획기적이고 초인적인 방법을 찾는데서 시선을 돌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전체로서는 너무나 불완전하나 퀴어의 면면이 표현된 기록들-의 역사로부터 배우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있더군요. 어딜가나 이상하기만 할 뿐인 자의 소속은 퀴어라는 것이고 이런 무소속의 다양함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각자 잘 살아갈 수 있기 위해 한 데 모인 이들 각각이 이미 퀴어함을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퀴어함에 대해 또 다양한 이야기들을 각자가 갖게 되어가는 것이겠다고, 한 회로 끝난 아쉬움을 흥미로운 도서목록으로 달래며, 퀴어로나 비퀴어로나 미개하나마 우선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흩어지기-모이기]가 이런 질문과 고민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어준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다른 기획이 이어진다면 퀴어적이면서도 좀 더 자유로운 관점에서 다양한 영역의 당사자를 만나고 싶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퀴어가 무엇이고 퀴어한 사람, 미술, 문학, 영화가 무엇이고 어떻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시도하며 나타난 여기저기의 것들이 그렇게 전형의 완성형에서 벗어난 바로 그 퀴어함을 보고싶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