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자 몸을 갖고 태어났지만 남자예요. 전 트랜스젠더인 걸까요? 그냥 남자 아닌가요?
본인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당신은 그냥 남자입니다. 당신의 몸이 여자 몸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여자와 남자한테 걸맞은 몸이라 여겨지는 몸의 형태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놓은 사회 규범에 따라 그런 것일 뿐 사실 당신에게는 애초부터 여자 몸이 아니라 남자 몸이지요. 성장한 여성형 몸의 특징이라 일컬어지는 부푼 가슴, 질, 자궁 등을 가지고 있는 몸이라 하더라도 그 몸으로 살아가는 당신이 남자라면 몸도 엄연히 남자 몸입니다. 당신은 남자 몸을 한 남자라는 뜻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른바 남성형 몸의 특징이라 일컬어지는 음경과 고환을 가진 몸이라 하더라도 그 몸으로 살아가는 이가 자신을 여자라 인식한다면 몸도 물론 여자 몸이지요. 그녀는 여자 몸을 한 여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른바 여자 몸, 성장기에 여성 성징이 나타나리라 예상되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는 여성이라는 성별이 주어집니다. 이 아이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다른 길은 없다는 듯 여자 아이로, 딸아이로 길러지지요. 이른바 남자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면 남자 아이로 길러질 테고요. 당신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성으로 지정 받고 그에 따라 길러졌을 거예요. 이렇게 되면 당사자가 부여 받은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이 달라집니다.
이때 부여 받은 성별과 무관하게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로만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뿐만 아니라 자기가 태어났을 때 부여 받은 성별과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에서 오는 경험 또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상당수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만으로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어딘가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남자라도, 혹은 똑같은 여자라도 출생 시 부여 받은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이들과 출생 시 부여 받은 성별과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자기는 같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서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은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반영하는 유용한 범주가 됩니다. 그냥 남자라고만 할 때는 잘 드러나기 어려운 경험의 결이 트랜스젠더 남성 (혹은 트랜스남성, ftm 트랜스젠더) 이라고 이름 붙이면 한층 명확히 드러나니까요. 본인을 남자 혹은 남성이라고만 이름 붙일 것인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도 같이 묶어 지칭할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언제 어떤 필요를 느끼는가에 따라 직접 선택할 일입니다. 선택한 바 그대로 존중 받아야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