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
서울시청 무지개 점거농성에 돌입하며
우리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로 이 자리에 선다.
성소수자가 편견과 혐오로 인해 소외되고 차별받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인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을 수수방관한 서울시의 무능한 대처를 지켜봐야 했다.
성소수자는 시민으로서 이미 이곳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찬성”과 “반대”가 가능한 문제로 전락시킴으로써 성소수자의 삶이 언제라도 부정당할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시민이 누려야 할 인권적 가치와 규범을 담은 서울시민 권리헌장을 만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박원순 시장이 극우 기독교세력 앞에 성소수자 인권을 내동댕이치며, 서울시민의 힘으로 제정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싼 “논란”을 사과하는 비굴한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단 며칠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성소수자 인권의 후퇴가 아니라, 한국 사회 인권의 후퇴다. 우리는 한국사회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동 앞에 더 이상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농성에 돌입한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제는 성소수자 우리의 몸으로 증명하고 싸워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서울시청 안으로 들어선다.
우리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에 요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장 나와 성소수자를 만나라.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시장 당선 이후 단 한 번도 성소수자 단체의 면담 요구에 응한 바 없다. 보수 기독교 단체와 혐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덕담을 나눌 시간에, 서울시민인 성소수자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은 혐오와의 결탁을 끊고 성소수자와의 대화에 즉시 응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즉각 사과하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반인권세력, 성소수자혐오세력의 행패와 난동, 폭력을 수수방관한 서울시의 무능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의 민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인권헌장을 자의적으로 용도폐기 시키고자 한 서울시의 기만적인 시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소수자 인권을 부정하면서 극우 기독교 세력의 혐오와 차별을 승인해버린 기회주의적인 행보에 사과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조속히 선포하라. 시민위원회가 헌장 내용을 적법하게 확정한 이상, 이를 선포하는 것은 서울시장의 당연한 의무다. 서울시민인권헌장에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포함하여 그 어떠한 차별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서울시민의 성숙한 인권의식이 오롯이 담겨있다. 서울시는 스스로 예정한 날짜인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하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의 혐오폭력에 대한 책임을 엄정히 물으라. 폭력은 깨진 유리창과 같아서 방치하면 모방자를 양산할 뿐이다. 혐오세력은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를 고성과 야유, 의사방해와 혐오폭력으로 짓밟았다. 이는 성소수자 서울시민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서울시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인권도시 서울에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혐오세력의 폭력과 반민주적 행태에 법적으로 단호히 대응하라.
우리의 농성은 성소수자의 옆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고 인권의 가치를 함께 지켜나가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걸었던 슬로건은 “당신 옆에 누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다. 고작 6개월이 지났다. 우리들은 성소수자 옆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없음을 똑똑히 확인하는 지독한 시간을 보낸 후, 지금 이 자리에 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엄혹한 시간을 성소수자의 인권이 평등하게 보장되고 보편적 차별금지 원칙이 흔들림 없이 지켜질 것을 요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의 외침으로 통과할 것이다.
우리는 성소수자와 시민사회단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우리와 함께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한국사회에 드리워진 반동과 차별, 혐오의 구름을 걷어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머리를 맞대고, 몸으로 만나고, 목소리를 모으자. 서울시청을 넘어 광장으로, 성소수자가 먹고 마시고 일하고 사랑하는 일상의 공간으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도록 함께 외치자.
외침은 더 큰 외침을 낳는다. 우리의 외침이 저 멀리 퍼질 수 있도록 소중한 지지와 연대의 끈을 튼튼하게 묶어내며, 우리는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선 더 큰 싸움을 장을 열어나갈 것이다. 혐오와 차별에 맞선 분노로 시작한 이 싸움의 끝에서 우리는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는 미래를 마주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2014. 12. 6.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및 무지개 농성단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