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아플 때 병원에 동행해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나요?
당사자가 의사능력이 있는 상황이라면 원칙적으로는 보호자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수술 및 입원 동의서에 동의 표시를 할 수 있는 만큼 대리인 서명은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병원의 이익 보호를 위해 보통 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입원이나 수술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때 수술동의서를 작성하는 대리인 자격은 민법상 부양의무가 있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로 한정되어 있으며, 동성 파트너는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병원 기록을 열람할 권리도 친족에 한정되어 있어 환자의 적극적인 의사표시가 없다면 동성 파트너가 환자의 병원 기록을 열람하기도 불가능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동성 커플의 권리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전반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소수자들이 의료현장에서 겪는 불평등을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으니, 이러한 활동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제도적 불평등을 바꾸어나가는 데에 힘을 보태 주세요.
한편,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의사 표현이 가능한 상태에서 본인이 의식을 잃고 위독해질 상황에 대비하여 자기가 원하거나 거부하고자 하는 치료 방식 그리고 대리 의사결정권자 등을 직접 미리 지정해 둘 방법이 있습니다. 사전의료지시서(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공증을 받아두고 배우자나 가까운 지인에게 지시서의 존재를 단단히 일러 두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사전의료지시가 법으로 제도화되어 있지는 않은 상황이나 적지 않은 병원에서 공증된 사전의료지시서 내용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환자를 치료하거나 임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커플이 평소에 함께 이야기해오던 방식으로 의료 절차를 밟을 수 없게 될 것이 걱정된다면 사전의료지시서를 마련해 두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