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1 소연] 동성혼 법제화, 우리에게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기를

[혼인평등_회원 인터뷰]를 시작하며

2024년은 여러 의미로 기억할 만한 해이다. 1994년 창립한 한국레즈비언상담소(전 끼리끼리, 이하 상담소)가 30주년을 맞이한 해이거니와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이 뜻을 모아 본격적으로 동성혼 법제화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싹튼 지 정확히 30년을 맞이하는 해에 혼인 평등이 더욱 선명한 의제로 부각했다는 점은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변화는 느린 듯해도 계속되고 있고, 작은 물꼬에서 시작한 움직임은 더 큰 물결로 흐르고 있다. 물길은 모이고 커지면 유유하다. 이제 어느 정도는 자기 역사를 갖게 된 유유한 물결이기에 우리가 정말 바라 마지않는 것, 수면 아래서 회오리치는 희망을 길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30년의 힘이다.

하지만 동성혼이라니 아직은 또 먼, 새로운 꿈 같다. 결혼은커녕 “남자친구 아니야. 여자친구야.”라고 말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그 먼 꿈을 앞당기기 위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가 힘을 모아 동성혼 법제화 캠페인 ‘모두의 결혼’을 펼친다.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에 함께하는 상담소도 ‘모두의 결혼’ 캠페인에 힘을 싣고자, 나아가 여성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그리는 가족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그것이 꼭 동성혼이 아니더라도—구체적으로 들어보고자 회원 연속 인터뷰를 마련했다. 인터뷰는 5월 첫 화를 시작해, 연중 매달 1회씩 연재될 예정이다.


[혼인평등_회원 인터뷰 01 소연] 동성혼 법제화, 우리에게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기를

들려준 사람: 소연
정리: 나루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은 상담소 활동가 소연이다. 지난 5월 2일, 인터뷰를 위해 소연과 상담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평소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온 소연이기에 첫 인터뷰이로 적합하겠구나 싶었다. 그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었다.

나루 소연님, 안녕하세요.

소연 안녕하세요. 좀 긴장되네요.

소연이 반상근활동가로서 사무국에 합류한 게 지난 2월이니 벌써 석 달을 함께해왔지만, 쟁점 논의나 실무 진행 같은 딱딱한 일 얘기 말고 속 깊이 찬찬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았다. 나도 괜히 긴장이 됐다. 빈틈없는 계획형인 소연은—MBTI 확신의 J다—이 인터뷰가 어디로 흐를지, 어떻게 정리될지를 물었는데 나는—짐작하겠지만 P다—이날도 역시 치밀함이라곤 없었다. 자칫 허술해질 뻔한 이 인터뷰의 심도를 그러나 인터뷰이 소연이 만들어냈다. 울고 웃는 자리였다.

소연은 2020년 겨울부터 애인과 함께, 그리고 곧 두 살이 되어가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애인과 고양이를 다른 누구보다, 즉 원가족보다 지금 자신의 가족으로 느낀다고 했다.

나루 가족이라고 할 때 대표적으로 두 가지 연결이 있는 것 같아요. 혼인이라는 제도나 혈연으로 엮인 가족이죠. 소연님은 애인과 결혼을 했다기보다 함께 살면서 가족으고 생각하시게 됐는데요. 대부분 여성 성소수자들이 소연님 경우처럼 ‘같이 살면서’ 특히 가족이라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소연님께도 같이 사는 물적 토대가 가장 중요했을까요?

소연 맞아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제 나잇대 여성 퀴어 친구들을 봐도 결혼을 생각하면서 애인을 만나진 않거든요. 그런데 삶의 많은 기반을 상대방과 공유하고 한 팀이라고 느낄 때, 우리가 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모을 때 가족이라 느끼는 게 커요. 잠깐 만나고 말 사이였으면 집을 합치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영원한 결혼까지 생각하고 동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랑 애인만 해도 장거리 연애를 하는 동안 더 많이 같이 있고 싶었고, 마침 이 친구는 서울에 오고 싶어 하고 저는 독립을 하고 싶었던 차여서 경제적인 면에서도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그때는 딱히 ‘가족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나루님이 가족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정말 제 애인이 가족이구나 싶은 거죠. 특히 고양이를 입양하면서는 더욱 가족이 된 거 같아요.

          소연의 고양이 조로  소연의 고양이 조로
          2023년 겨울에 구조해 소연의 가족이 된 고양이 조로.

나루 이성애자 커플로 치면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된다는 게 삶에서 큰 전환점이잖아요. 소연님도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셨다는 어떤 종류의 체감이나 실감이 있나요? 우리가 가족이 된다는 건 헤테로들의 그것과는 꽤 다른 것 같거든요.

소연 여성 퀴어들이 갖는 애인과의 관계가 참 다채롭고, 어떻게 보면 모호하기도 한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엄마랑 언니들은 제가 친구와 같이 사는 줄 알고 있어서 그게 마음에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우리는 같이 살면서 이 사람이 분명히 내 가족이라고 느끼는데, 그걸 체감하느냐 실감하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 같아요. 가족이라는 어떤 공인이나 선언이나 자기 스스로의 강한 확신이 이루어지는 것과 우리의 그 느낌 사이에 간극이 있달까… 헤테로들이 결혼을 통해 가족을 만들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거나 삶의 전환점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거죠.

나루 만약 동성혼이 법제화된다면 지금과는 꽤 달라질 것 같아요. 소연님 말씀에 빗대면 혼인을 통해 가족이 되고, 그걸 자신도 좀 더 명확히 인지하고, 사회적으로도 공인되고 선언된달까요. 그렇게 우리의 가족 구성이 더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는 게 좋을까요? 어떨 것 같아요?

소연 음, 정신이 번쩍 드는 질문이네요. 동성혼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진다면 우리도 헤테로처럼 이 나이쯤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연애의 어느 시점이 되면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한테 소개하고, 결혼식이라는 의례도 치러야 할지 모르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동성혼 법제화가 덜 유연하다거나 지금이 더 자유롭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제도가 없으니 내가 하는 눈앞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잖아요. 경험하면서 만들어내거나 사후적으로 의미화하게 되죠. 선택지가 생긴다는 건, 이 선택이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그래도 좀 더 알게 되는 일이고, 의미화하는 것이 더 가능해지는 일이라고 봐요. 결혼제도 없이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알기는 어렵고, 몇 년씩 함께 살면서도 미래를 그리기가 모호해지기도 하니까요.

나는 우리가 ‘헤테로처럼’ 결혼을 하는 게 여전히 잘 그려지지 않고 조금은 거부감도 든다. 동성혼 법제화 운동을 지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 한편에서 드는 솔직한 생각이다. 이 또한 (이성 간의 결혼을 모델로 떠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성애 중심주의적인 사고일지 모른다. ‘지금이 더 자유로운 건 아니지 않냐’는 소연의 말이 조금은 실마리가 되어 주는 듯하다.

나루 소연님은 동성혼 법제화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기도 했죠. 언제부터 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게 되었나요?

소연 연애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전에는 좀 멀게 느꼈는데 집 문제, 보험 문제, 부양자-피부양자 문제 같은 게 피부로 와닿았달까요. 그러다가 논문을 쓰면서 동성혼에 대해서 더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죠. 미국의 동성혼 법제화와 그 이후를 평가할 때 동화주의적이라거나 백인 중산층 중심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한국의 가족구성권 논의에서는 ‘동성결합’ 내지는 ‘시민결합’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었어요. 동성결혼이냐 시민결합이냐 하는 문제가 정말 간단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 둘 사이의 인식론적이고 담론적인 차이와 긴장감은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실천적인 운동을 추동하는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고민도 생기더라고요. 많은 여성 퀴어들이 점점 더 가족구성권, 혼인의 필요를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목소리들을 좀 더 잘 듣고, 모아내고,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됐어요. 상담소 활동을 결심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 커요. 현장의 목소리들에 가까이 있고 싶었어요.

시민결합을 대표하는 제도로는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라는 표현(2017년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촉구한 청와대 국민청원 글 제목)에서 드러나듯 시민결합은 혈연과 혼인으로 묶이지 않는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령 친구와 같이 사는 경우, 지인을 부양하는 경우, 공동체를 꾸리는 경우 등을 인정하고 이들을 가족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상과 달리 세계적으로도 생활동반자법은 성애적인 2인의 관계, 즉 대체로 커플일 때에만 등록 가능한 것으로 발의 및 제정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는 다양한 가족구성을 보장하지 못하며, 인정 및 보호의 수준도 이성애자의 사실혼 관계와 유사한 정도라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은 생활동반자법과 더불어 별개의 동성결혼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한국 상황에서는 생활동반자법조차 사실상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며 훼방과 반대에 시달리기에, 어떤 법이든 이처럼 동성혼이 걸림돌이 될 바에는 동성혼 법제화로 정면 돌파하자는 의견도 있다. 소연은 두 법이 다 필요하지만, 동성혼 법제화를 통해 혼인이라는 선택이 가능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럼 동성혼 법제화가 된다면 결혼하실 거예요?” 물으니 소연은 의외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인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가족 안에는, 특히 엄마와 딸 사이에는 어렵고 섬세한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소연은 인터뷰 중에도 엄마 이야기가 나올 때면 울었다. 애인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언니들에게 받은 상처도 깊고 아파 보였다. 강하게만 보였던 소연의 약한 부분을 알게 된 것, 그게 나도 애달프고 아렸다. 그런 아픈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그래도 소연은 씩씩하게 말을 이어갔다. 소연이 “동성혼, 상상만 해도 일단 기분이 좋다!”라고 강조해서 말할 때, 우리는 언제 눈물을 훔쳤냐는 듯 같이 웃었다.

소연 제가 지금 당장 혼인신고를 못한다고 해도 동성혼 법제화가 되면 일단 너무 기분이 좋겠죠. 이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기분이 좋은 거.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슨 성명서를 쓰거나 기자회견을 해도 좋은 일은 별로 없잖아요. ‘이것저것 다 규탄한다’라는 게 농담일 정도로. 그래서 동성혼이 가능해지면 굉장히 기분이 좋을 것 같고, 훨씬 덜 위축되면서 살 거 같아요.

소연은 내가 살아가고 발붙이고 있는 이 사회가 그래도 동성결혼이 되는 사회다, 하는 점에서 가지게 될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굳이 차별이라고까지 이름 붙이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위축되는 일들, 일터에서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흠칫하는 순간,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계정으로 하고 팔로워를 가려 받는 일, 토론이 일어날 때면 내가 당사자라서 이렇게 말하나 하고 검열하게 되는 것 등 여러 순간에 마음의 부담이 덜어질 것 같다고.

어느덧 마지막 질문의 시간이다.

나루 마지막으로 소연님은 앞으로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으세요?

소연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제발 자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이사 다니고 싶지 않고, 가구 하나 사면서도 이사 갈 때 어떡하지 고민하게 되는 일 그만하고 싶어요.

나루 안 그래 보이는데 소연님은 안정감이 되게 중요한 분이구나. 물적 토대, 제도적인 보장, 삶의 안정성을 찾고 싶고 닦고 싶은 마음이 큰가 봐요.

소연 맞아요. 그래서 항상 계획을 하려는 편이고, 그렇게 통제감을 발휘하면서 불안을 다스리게 돼요. 그러니까 저한테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 중 큰 게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워보는 거. 커다란 계획일 때도 있지만 그냥 네이버 부동산 들어가서 집 찾아보고, 로봇청소기 사고 싶다 하면 열심히 검색해보면서 내가 얼마씩 언제까지 모아서 사야지 이렇게 계획해보고는 하죠. 때로는 그게 어려워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던져버리기도 하지만요.

동성혼 법제화가 되는 날, 소연이 하늘로 날아갈 듯 째지는 기분일 것도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어서’의 차원은 아닐 거다. 소연의 불안을 달래줄 물적 토대를 얻는 일, 그의 말대로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다’ 하는 믿음을 얻는 일, 그렇게 단단한 안정을 주는 일. 꽃길뿐인 삶은 없다. 하지만 소연에게 펼쳐진 앞길이 너무 질고 험하기보다 단단했으면 좋겠다. 소연이 바라는 동성혼 법제화의 날이 와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꼭 곁에서 함께하고 싶다.

(인터뷰: 2024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