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인데 사람들이 남자친구는 없냐, 결혼은 안 하냐, 사생활을 캐물어서 곤란해요.
일터의 성격이나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한 공간에서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직장 동료들끼리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시시콜콜 참견하게 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른바 결혼적령기 전후의 비혼 여성에 대한 참견과 훈수는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심지어 제도 결혼을 안 한다는 차원에서 비혼일뿐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도 남들 눈에는 그저 ‘노처녀’로만 비춰지면서 마치 간섭해도 되는 손쉬운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나이 찬 여자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마땅하다는 뿌리 깊은 이성애주의의 효과이지요.
애인과 연락하기에도 참 불편합니다. 점심 시간에든 쉬는 시간에든 누구하고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게 보이면 하나 같이 누구냐? 남자친구? 썸? 등등 질문을 쏟아 놓으니 애인과의 연락도 피치 못하게 줄이게 되고요. ‘솔로’로 지내는 게 몹시 외로워 보이는지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절하는 것도 한 두 번이라 계속 거절했다가는 이상하게 보일까 싶어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 마음 상하지 않게 무슨 핑계를 대고 거절해야 하나 머리가 아픕니다. 번번이 버럭 화를 낼 수도 없고 무례하게 거절하기도 뭐하니 난감합니다. 일터에서 괜히 인간관계라도 틀어질까 싶어서 말입니다.
꼭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간섭을 막아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결혼을 하기에 적절한 때라는 게 따로 있다고 생각지도 않고, 굳이 애쓰기보다는 자연스레 찾아오는 인연을 기다리고 싶다는 식으로 친절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해 주는 겁니다. 왜 연애를 안 하는지, 왜 남자친구가 없는지 묻는 사람들에게는 꼭 연애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고 못 박아 주고요. 독신주의자라거나 비혼주의자라고 선언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더 이상의 간섭은 사양한다고 말입니다.
자기 혹시 동성애자야? 그래서 그러는 거야? 라는 식으로 물어 보는 사람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당신은 비밀을 들킨 것 같아 내심 뜨끔할 수도 있겠지요. 당신이 준비만 된 상태라면 그런 상황을 활용하여 커밍아웃을 해도 좋습니다. 실은 그렇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섣부르게 덜컥 인정했다가 일터에서 불편한 상황들이 생기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일터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감수성을 잘 고려해서 대처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말해서 좋을 일이 없다 싶으면 별 질문 다한다는 듯이 일축하고 넘어가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