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반들하고 어울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썩 내키지 않는데도 억지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려고 한다면 사실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기 어렵고요. 그런데 내가 왜 다른 이반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지,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내가 다른 이반들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픈 욕구를 전반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면 굳이 에너지를 들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필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사회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 정도와 관계에 대한 욕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자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번개와 같이 이반들이 주로 만남을 갖는 통로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와 같이 자신의 생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비교적 쉬운 이성애자들과는 달리 주변에서 이반 친구를 만나 친하게 되기까지는 더 어려울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이 이반들에게 더욱 빈번한 만남의 경로가 되곤 하지요. 이와 같은 만남의 방식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독서 모임이나 밴드, 야구팀과 같이 주로 오프라인에서 활동이 이루어지는 이반들을 위한 취미 모임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성소수자 인권운동모임에 참여해보셔도 괜찮고요. 처음에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만남은 아닐 수도 있으니 어색하더라도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 시도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반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함께 나눌 이야기가 없고 잘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굳이 이반들과 친해지려는 마음을 먹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든다면 대형 커뮤니티에서 친구를 찾을 때 보다 더 세심하게 내가 원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거나 나의 성향과 더 잘 맞을 것 같은 소규모 커뮤니티를 탐색해보기를 권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와 아주 잘 통하는 사람을 단번에 찾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실패에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세요. 그러다 보면 나와 맞는 사람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만 이반이면 됐지 왜 꼭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나 나와 저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인 것 같이 느껴지면서 이반 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반이면서도 이반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나도 모르게 갖고 있을 때 이러한 종류의 거북함을 느끼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반들을 만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정체성으로 인해 특수하게 발생하기 마련인 여러 가지 고민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비슷한 고민을 해왔던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얻는 과정이 굉장한 소속감과 안도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소위 ‘정상’이라고 인정하는 삶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사람으로서 혼자서는 그 압박감을 견뎌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가 신뢰하고 서로 지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다른 이반들을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은 실제로 다른 이반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깨어지거나 변화하기가 더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