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과정을 규탄한다!
우리 모두 존엄하기에 혐오세력이 인권을 더럽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인류가족 모두의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다. 인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만행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했던가를 기억해보라.”
1948년 12월 10일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의 참사를 겪은 후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학살과 전쟁의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뼈아픈 각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언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것을 부인할 때 어떤 만행이 벌어지는지 세계인들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66년이건만 2014년 서울의 인권 현실은 선언문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이 명시한 인권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막말을 해대던 이들은 서울시 인권헌장에 차별을 금지하지 말라고 한다. 말이 삶을 잡아먹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 마련을 막아왔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공공연하게 혐오하는 발언을 해왔다.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과 2010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며,올해 여름 신촌에서 열린 퀴어페스티벌을 폭력적으로 방해했다. 최근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하였다. 이렇제 혐오를 주도했던 엄마부대 봉사단과 에스더 기도운동 등은‘서울시민 인권헌장 동성애 합법화 조항 반대 시민연합’을 만들어 서울시가 제정하려는 ‘서울시 인권헌장(이하 인권헌장)’ 제정에도 차별과 혐오로 무장하여 달려들고 있다.
그들은 인권헌장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가 명시되거나 ‘탈(脫)가정 성소수자 청소년 지원’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마음대로 해달라고 주장한다. “성소수자들은 질병이고 변태”라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부인했다. 누군가의 삶을 부정하고 질병으로 단정하여 치유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슷한 논리를 2차 세계대전 당시 6백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죽이며 했던 나치에서 본 적이 있다.나치는 ‘세상에서 독일 민족이 제일 우수하며 유대인은 열등하다’며 ‘우수한 인종에게는 살아남을 권리뿐 아니라 열등한 인종을 정복하거나 심지어는 멸종시킬 권리까지도 있다’고 믿었다. 이성애자들이 아닌 성소수자의 권리를 부인하는 것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인권의 이름으로 차별을 옹호할 것을 주장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시 인권헌장은 서울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거쳐 12월 10일 제정할 것이라고 한다. 인권선언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기 위해 각종 국제인권규약이 만들어지고 인권법이 제정되고 있는 현실에서 서울시 인권선언이 이제껏 만들어진 인권 규범들을 뒤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인권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등에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에 근거한 차별금지’ 조항이 존재하는데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는 혐오세력에 굴복한 ‘인권 없는 인권헌장’일 뿐이다.
국제인권기준에도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옹호되지 않는다. 혐오나 전쟁을 선동하는 표현은 인권이 아니다. 인권이란 우리 모두가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삶을 갉아먹는 말이 아니며 인간 존엄을 바탕으로 한다.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로 인해 죽음으로 몰렸는지 기억해야 한다. 혐오는 폭력이다. 혐오 발언을 ‘의견’으로 받아들인다면 폭력을 용인하는 꼴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인권의 언어로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최근 인권헌장 간담회에서 성소수자와 에이즈감염인,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 이들에 대해, 서울시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우리는 진실이 사라지고 말이 힘을 잃은 세상에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유족된 게 벼슬이냐‘며 막말하던 이들이 말의 힘을, 인권의 언어를 차용하고 더럽히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가치를 믿기에, 인권 헌장 제정에서 노골적으로 혐오를 일삼고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막으려는 세력에 맞설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지우려는 인권헌장의 문구 하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달려있고, 인권의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신문광고를 통해 왜곡하는 성소수자 혐오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조하고,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후퇴된 인권의식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인권을 원한다. 인권의 보편성과 비차별, 평등성이라는 인권의 원칙이 견지된 인권을 원한다. 모두를 위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혐오세력에 맞설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혐오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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