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제21대 국회에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다. 이어 6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국회에 촉구했다. 이후에도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입장이 이어지고 있다. 평등의 조류가 거세지고 있는 지금, 성소수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한다.
2007년 발의가 무산된 이후 차별금지법은 혐오와 반인권을 선동하는 세력에게 조리돌림과 모욕을 감내해왔다. 차별금지법은 줄곧 합의의 미명 아래 미뤄지고 누더기 법안으로 망가지는가 하면 우익과 개신교 집단의 줄기찬 반대와 공격에 발의 직후 철회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에는 항상 성소수자 인권이 소환되었다. 성소수자는 반대의 이유로 오르내리며 소모되는가 하면, 근거 없는 편견에 낙인찍히고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사회적 제도와 권리로부터 배제당하고 불이익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커뮤니티는 오래전부터 혐오에 맞서면서도 권리를 요구하며 변화를 도모해왔다. 성소수자는 스스로를 드러내며 인권과 존엄의 가치를 외치고 사회 변화를 추동해왔다. 성소수자의 용기 있는 드러냄은 집단의 오랜 투쟁에 연결된다. 우리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하는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 폐지를, 감염인에게 성적 낙인을 찍는 에이즈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 폐지와 감염인 인권 증진을, 자기결정에 기반 한 성별정정 논의를 통해 누구나 자신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해왔다. 혼인평등과 가족구성권은 사회구성원에 대한 제도적 보장과 더불어 오랜 시간 배타적이고 강제적으로 작동해온 결혼제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를 꿈꿀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0년이 넘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차별 금지와 평등에 대한 요구가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에게만 국한하는 것이 아님을,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포석임을 알렸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혐오와 차별에 맞서며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성찰하고 실천해온 인권운동과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노력해온 성과다. 특히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공격받았던 성소수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실천을 통해 인권은 나중으로 미룰 수 없고 반반으로 나눌 수도 없음을, 나아가 인권은 순서를 매길 수 없으며 합의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음을 알려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해온 시간은 스스로 권리를 요구하고 사회의 변화를 실천하는 정치적 주체임을 확인하고 실천해온 궤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고 침묵을 강제당해야 했던 성소수자들이 서로의 삶을 지지하며 구축해온 공동체의 역사가 바탕 한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언어로 만들고 저마다의 요구를 집단의 의제로 모아냈던 권리에의 오랜 갈망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요구는 각자의 권리가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에 국한한 것이 아니며 빈곤과 장애, 노동, 인종과 질병 등 사회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임을 체감한 경험과 배움의 시간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인권을 외치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우쳤다.
성소수자들이 갈망하는 변화의 요구는 단호하고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혐오는 사회전반에 만연해있다. 오랫동안 국가는 혐오를 합의대상으로 삼고 혐오를 방기하고 가담하기까지 했다. 반인권적 혐오선동이 인권의 발목을 잡는 동안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나중으로 미루거나 침묵을 지켰다. 많은 정치인과 지자체가 앞다퉈 인권을 표방했지만 정작 성소수자만큼은 입에 올리기를 망설이거나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혐오선동을 방조할 뿐 아니라 이들이 세력화하는데 물꼬를 터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등과 인권의 도도한 흐름을 막지 못한다. 현재 군형법상 추행죄와 에이즈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여부를 심사 중이다. 이는 소수자를 낙인찍고 범죄화했던 제도들이 사라져야할 구태의 것임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2019년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관련 예규는 부모동의가 필요 없다고 개정한데 이어 성별정정 과정을 완화함으로써 트랜스젠더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일보 전진의 성과를 남겼다. 대중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 단적으로 2019년 갤럽에서 동성애자의 취업기회가 평등해야 한다는데 동의한 답변은 90%로 압도적이었다. 그것은 19년 전 69%와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소수자들의 오랜 투쟁은 단순히 성소수자가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뿐 아니라, 시민과 비시민을 나누는 위계를 근원적으로 묻고 의심할 것을 표명한다. 우리는 성소수자의 권리 요구가 제도권에 안착하거나 일등 시민에 근접하기 위함이 아닌, 구성원을 위계에 맞추고 순번을 매겨 생존의 경계로 밀어내는 사회에 저항하는 노력임을 안다. 공존을 모색하고 변화를 추동해온 우리의 요구는 이제 공고했던 제도의 문을 두드린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변화의 증표이자 그 시작이다.
국민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지금, 정부와 국회는 나중으로 미룬 인권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국회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인권운동과 시민사회의 준엄한 요구를 받아 실천하겠다는 결의를 보여라. 우리는 당신들의 담대한 걸음을 환영하고 지지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할 것이다. 이제는 21대 국회가 평등과 인권을 향한 걸음에 길을 놓을 차례이다.
성소수자가 요구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2020. 7. 30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