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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6년 6월 24일
_ 선우유리
일상적 자살에서 해방된 세상을
故육우당, 오세인 추모의 밤에 다녀와서
4월 22일 토요일 오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상담팀 세미나를 마친 뒤 활동가들과 함께 故육우당, 오세인 추모제 “내 혼은 꽃비 되어”가 열리는 고려대학교로 향했다.
추모제에서 연대사를 부탁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 무거운 의미를 지닌 자리인지라 가는 내내 3년 전 육우당이라는 청소년 남성 동성애자의 죽음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재의 내가 놓여져 있는 공간을 벗어나 사고하기란 역시 어려운 일인지, 출근하려고 사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함께 일하던 활동가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면서도 슬프고 뼈 속까지 아픈 일이었을지 그 먹먹한 느낌만이 다가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육우당이 생전에 썼던 일기와 시 그리고 유서를 모은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의 간행사를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가 낭독하는 것으로 추모제는 시작됐다. 동성애자 해방세상을 꿈꾸며 열아홉 나이로 육우당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2003년 4월은,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차별조항을 삭제하라고 주장하는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목소리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반영된 것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국민일보 측의 탄압이 한창 거세던 시기였다. 추모제에선 이에 저항하던 당시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운동을 담은 영상에 이어 육우당의 시 몇 편이 소개됐고, 故육우당과 오세인을 추모하는 인권단체들의 연대사와 그들을 알고 지내던 동인련 활동가들의 발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내 존재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
동성애자와 자살, 함께 묶여 있어도 그다지 생경스럽지 않은 조합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일부를 죽이며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구성하는 요소 중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성 정체성을 숨기고 동성애자가 아닌 척 굴어야 하는 순간 순간들이 말 그대로 ‘일상’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내가 나를 죽이는 것에 너무나 무뎌져 그게 아픈 상처인 줄도 어떨 때는 잊고 살 정도로 말이다.
암묵적으로 혹은 피부에 와 닿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고통을 알 리 없는 일부 속편한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문화물이 늘어났다는 단편적인 현상 하나만을 보고 세상 많이 달라졌다고, 동성애자 인권이 향상되었다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안타깝게도 한국레즈비언상담소를 찾는 동성애자들의 고민에는 그다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동성애자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화하는
추모제를 함께 다녀온 십대 레즈비언 활동가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꼭 털어놓으라고, 혼자만 떠안고 있다가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말라고 말이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엔 죽고 싶은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 뿐 많이 나아졌다고.
우리가 동성애자 죽이는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육우당이 목숨을 끊은 지 1년 후인 2004년 4월,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었듯이 말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죽음을 택해야 하는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려면, 육우당, 오세인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온전히 드러내어 놓고 웃고 떠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동성애자를 향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는 활동을 열심히 해 나가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최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