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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6년 1월 2일
_ 김김찬영
제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선 ‘찾아가는 동성애 바로알기 강의’라는 교육사업을 하고 있어요. 강의를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우리 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깊잖아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얻고자 하고, 나아가 차별을 시정하는 길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참 보람찬 것이지요. 강의에 나가던 초기에는 그런 뿌듯함으로, 아무리 황당한 질문을 듣거나 불쾌한 말을 들어도 지칠 줄 모를 정도였답니다.
강의를 하면서 저는 종종 가수 이수미의 “여고시절”이라는 노래를 예로 듭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여고시절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그것이 첫사랑이었구나’라는 것이에요. 이를 예로 들면서 “사실 대부분, 학창시절에 동성인 사람을 좋아해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라고 말을 하면, 강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동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처음에 그러한 반응은 제 마음을 기쁨으로 뜨겁게 달구고는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인 상대를 좋아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또한 그 경험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 레즈비언인 저에게 힘이 되어주는 듯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인 사람을 좋아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뻐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레즈비언 중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과정 중,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보았다는 것을 이유로 자신은 레즈비언이 아닐 것이라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서 받아들인 후에도, 이성을 좋아했거나 이성과 교제를 해본 것이 레즈비언 정체성에 있어 대단한 흠집인 것처럼 수치스러워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이성애자들은 동성에게 호감을 가졌던 과거의 경험들을 이성애자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유로 삼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니 동성을 좋아했던 경험이 있구나’ 하고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 경험이 뭐 별 거야? 나는 지금 당연히 이성애자인데’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듯 이성애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강한 확신에 차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동성애자 성 정체성이 늘 위태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불안한 것인데 반해 말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반면, 이성애자들은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이름 붙일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은 이성애만이 존재하고, 이성애만이 정상인 곳이니까요.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인 한글97에서 ‘이성애자’라는 글씨를 치면, 사전에 등록된 단어가 아니라는 뜻인 빨간 밑줄이 쳐집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빨간 밑줄이 쳐지지 않죠. 우리 사회에서 사전에 등록되어 설명될 필요조차 없이 절대적인 것, 그것이 바로 이성애이고 이성애자입니다. 동성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구분되도록 동성애자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이성애자는 그 정체성이 너무 당연해서 구분될 필요도, 특별할 이유도 없는 것이에요.
하지만 말이죠. 사람은 저마다 동성인 사람을 좋아할 확률과 이성인 사람을 좋아할 확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떤 성의 사람에게 더 자주, 더 깊이 이끌림을 느끼는지에 대해,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더욱 편안하고 행복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찾아올 수 있는 것이지요. 성 정체성이란 여러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한 번에 결정 나거나 다른 사람들이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사 동성인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단체의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을 하기도 했답니다. “동성애자는 자신에 대한 탐색의 과정을 거쳐 정체화하지만, 이성애자는 그저 사회화되는 것”이라고요.
동성인 사람들과도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과 그러한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때, 혹은 동성애자가 도처에 있음을 아예 자각하지 못하거나 동성애자들을 쉽게 가십거리로 삼으면서, 정작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참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들은 동성애자에 대해 무지한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이성애가 무엇이고 이성애자가 누구이며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동성애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밝힐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야 하지만요. 적어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강의에서 수강생들이 여고시절을 추억하며 잠시 감상에 잠긴다 한들, 저도 같이 감동에 젖지는 않게 되네요. 동성인 사람을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되던 친구가 지금은 남자를 사귀고 결혼을 준비하며, 마치 그러한 길을 걷는 자신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는 일이 갈수록 많아집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기억의 교통정리는 감행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저는 지금 행복한 가정을 가진 주부지만, 예전에는 동성을 좋아해본 경험이 있었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반가움은 더욱 줄어들게 되겠지요.
만약 제가 동성애자라면 당신은 ‘그냥 사람’이 아닌 이성애자여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이름을 달 필요가 없다면, 나 역시 동성애자가 아닌 한 사람일 뿐이에요. 이성애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기 위해서는 내가 왜 동성애자인 동시에 무심히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와 함께, 당신이 왜 이성애자인지 그리고 이성애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겠지요. 사실 지금 필요한 것은 ‘동성애 바로알기 강의’가 아닌 ‘이성애 바로알기 강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