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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6년 8월 29일
_ 케이
소년원 생활 인권교육요소 도입해야
정심여학교 인권교육을 다녀와서②
<인권에 대해 배울 권리를 요구하고 실천하는 인권단체와 교육활동가들의 연대모임인 ‘인권교육네트워크’에서 안양소년원 내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학생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와 고민에 대해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사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인 나루, 원영, 케이님이 공동으로 논의한 것을 케이님이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인권교육을 실시하며 학생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이 곳의 십대들은 시설 바깥으로의 출입과 통신을 철저히 제한 받고, 엄격히 짜인 시간표와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생활을 합니다.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고, 쇠창살로 가로막힌 공간에서 교사들의 지시에 따라서만 행동해야 합니다.
공간의 짜임새와 설치되어 있는 감시용 물품들 자체가 이들에게는 매우 억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작 사흘 동안 드나들었을 뿐인 우리 활동가들마저 그 공간 자체가 주는 갑갑함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을 정도니, 그 곳에서 수개월씩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감시와 통제 속에 ‘위계’를 배우는 학생들
이처럼 감시와 통제를 골자로 한 공간의 배치와 운영 시스템이 당연한 것처럼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소년원에 들어온 학생들을 ‘범죄자’이자 ‘교정 대상’으로만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소년원에서 만난 한 교사는 CCTV가 꼭 설치되어야 한다는 근거로, “사고의 위험”을 꼽았습니다. ‘상시적으로 감시해야 학생들 사이에서 혹은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행위나 자해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싫어해도, 위에서 지시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권위로 억누르고, 학생들에게 수치심과 불쾌감을 주는 방식으로 감시하는 방식이, 과연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 되짚어보고 반성하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맞지 않고 살기 위해 먼저 남을 때리곤 했다’는 학생들이 소년원에 들어와서 평등한 관계를 배우기보다 또 다시 더욱 강력한 권위와 위계를 체험하게 될 터이니까요.
상당수 학생들은 자신보다 권위가 있는 사람의 지시에는 따르고, 자신보다 권위가 없는 사람들은 무시하는 방식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 안에서 서로 대화하며 생활하기보다는, 좀 더 힘있는 학생이 힘없는 학생에게 호통을 치고 윽박지르며 반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었지요. 우리는 고함을 치는 학생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원이라는 공간이 유지되는 방식과 전체적인 분위기가 학생들 사이에 그런 불평등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니까요.
법무부와 교사, 교사와 학생, 힘 센 학생과 힘없는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가 바로 폭력을 유발하고 반복하게 만드는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매개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보고요. ‘교정’해야 할 것은 아이들 자체라기보다 아이들에게 폭력을 끊임없이 학습시키는 사회일 것입니다.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인권교육 필요해
인권교육네트워크의 이번 정심여학교 인권교육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인권교육네트워크는 작년에 정심여학교와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인권교육에 반감을 갖고 있는 교사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대형강의 한 번으로 간편하게 교육을 마무리 지으려는 학교 측에 형식적이고 단발적인 교육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점을 거듭 설명하며 올해 사흘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어요.
어렵게 얻은 사흘의 시간은 활동가들이 각각 맡은 모둠의 학생들과 이제 가까워졌다 싶으니까 벌써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학생들이 ‘인권’에 대해 좀더 친밀하게 느끼고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압축적인 프로그램보다 소년원 생활에 인권교육적 요소를 계속 도입해나가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입니다. 평등한 관계 맺기를 위한 몇 가지 약속을 함께 정해 다같이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내부 규범을 자치적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인권교육일 터이지요.
자신들이 느낀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조금씩 시정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CCTV 문제를 느껴 그 점에 대해 항의했을 때 그러한 의견이 실제로 반영된다면, 그 사실은 학생들에게 우리도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줄 수 있을 거에요.
지금은 학생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모아 항의 의견을 교사에게 전달하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권리의식이 고양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이 권리의식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 학생들이 누릴 수 있고 누려야 마땅한 정당한 권리들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마련된 인권교육 프로그램일 것이고요.
상담을 통한 자아존중감 회복 필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인권교육이란, 권위적인 공간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교육, 그러한 변화가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교육, 추상적인 문제가 아닌 피부에 와 닿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교육일 거에요. 위축되어 있거나 폭력성에 젖어있는 개인을 평화적인 관계 맺기에 익숙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속속들이 폭력적인 요소들을 안고 있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과 늘 함께 고민돼야 합니다. 차이가 차별의 매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인권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라 할 수 있죠.
가해 행위로 인해 소년원에 오게 되었지만, 또 다른 동료 학생으로부터 피해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상당했습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의 상처와 억울함을 가해의 ‘쾌감’으로 풀고자 하는 학생들도 많았지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자신의 동거인으로부터 겪은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희화화시켜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반복되는 폭력에 노출되면서 자신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몰라 자기가 입은 폭력을 또 다른 타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해 온 학생들도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학생들을 접하면서, 이들에게 지속적인 인권교육과 더불어 상담을 통한 치유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아존중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스스로 상처 받은 내면을 다독이는 힘을 기르도록 지원하며, 분노를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하여 해소할 수 있게끔 돕는 프로그램 말입니다. 개인의 상황에 맞춘 일대일 상담이나, 비슷한 경험을 지닌 학생들이 같이 하는 집단상담이 그것이죠. 상담은 학생들 눈높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장기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상담 프로그램이 병행된다면, 인권교육은 좀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받게 되면 학생들은 상담을 매개로 신뢰관계를 형성합니다. 이를 통해 대안적인 관계 모델을 접할 수 있게 되고요. 피해경험을 직면한 뒤 그걸 딛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아존중감은 서서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과정이 동반될 때, 자신이 정당하게 가져야 할 권리와, 남들 역시 보장 받아야 하는 권리에 대해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망은 작은 것부터 변화시켜가는 것
학생들이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하면서 보이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고, 권위를 내세우거나 물리적인 힘을 내세우지 않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초상이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 희망은 조그만 것부터 변화시켜 나가는 거라고. 한달음에 모든 게 바뀌진 않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거라고 말입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부족한 인권교육이었지만, 이번 교육을 계기로 소년원의 인권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않느냐고 말이지요. 그 관심의 끈을 꽉 쥐고 간다면 그것부터 조그만 변화의 시작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말입니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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