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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5년 7월 28일
_ 조이가현
벌써 2년쯤 전 일인가보다.
당시에 과외를 하고 있던 학생들 중 하나가 레즈비언이었다. 이 친구와 나는 서로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덕분에 공부하는 짬짬이 레즈비언으로서 세상 살기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 친구는 나를 통해 지지가 될 만한 바깥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고, 반대로 나는 그 또래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이 친구가 “선생님, 다음 주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 밤에 엄마한테 제 문제로 상담해야 된다면서 전화해줄 수 없으세요?”라고 물어왔다. 학생들이 이렇게 자진해서 부모님과 상담해줄 것을 요청해오는 일이 없기에 무슨 고민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다음 주 토요일에 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10대 이반 얘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나올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걱정이 된다면서 엄마가 그 방송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친구들과 10대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들은 얘기들을 나에게 해주면서 썩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송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아무리 잘해봤자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할지 뻔한데” 하기에 그러겠노라고 어머니께도 미리 말씀드려놓으라고 해두었다.
방송이 나가는 그날 밤, 나 역시도 걱정이 되어서 부모님이 되도록이면 보지 않으시도록 조치를 취해두고 학생의 어머님과 꽤 긴 시간 통화를 했다. 덕분에 나는 본방송을 보지 못했다. 다음날,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태서 하루 종일 어딜 가나 전날의 방송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 날 사람 많은 곳에서 엘레베이터에 탔는데 다들 기도 안찬다는 표정으로 이반이 어쩌고 레즈비언이 어쩌고 하는 통에 그 틈바구니에서 레즈비언인 나는 그야말로 등골에 땀이 송송 배어나오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방송의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동성애니 레즈비언이니 하는 단어가 저어기 바다 건너 어디 일인 줄만 알았던 사람들은 며칠씩이나 지치지 않고 10대 레즈비언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나중에 따로 방영분을 구해서 보았는데, 이미 주변사람들, 친구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을 들은 것만으로 방송 내용의 70-80% 정도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이 지경이니 학교에 있는 선생들이라고 피해갈 수 있었겠는가. 그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부터 학교에서는 일제히 ‘레즈비언 탄압’에 들어갔다. 정말 말 그대로 그것은 ‘탄압’이었다. 방송에서 ‘이것이 10대 레즈비언들이다.’하고 제시해준 공식에 조금이라도 들어맞는 것 같은 학생들을 골라내고, 머리길이부터 교내에서의 복장, 평소복장을 규제했고, 심지어는 학생들의 교우관계까지도 규제하고 차단했다. 내가 과외 했던 학생 역시 집에서야 부모님이 직접 그 방송을 보지 못하셨으니까 큰 일이 없었지만,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제재당하는 입장에 처했다. ‘누구는 그걸 못 견디고 가출을 하고, 자퇴를 하고, 누군가는 강제적으로 전학을 당하고, 또 자신은 어느 친구와 인사만 해도 어떤 선생이 너네 레즈냐고 비꼬는 바람에 밖에서만 아는 척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그 친구를 통해 종종 들었다.
뿐만 아니라 10대 레즈비언들은 이전까지 친하게 지냈던 일반친구들이 냉담하게 등을 돌리는 것을 목격해야했고, 왕따를 당했고,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등 뒤로 쟤네 레즌가봐 하는 수군거림을 들어야만 했으며 심하게는 방송에서 어디어디에 레즈비언들이 모인다더라고 내보낸 탓에 그 근처에서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경험하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가시적인 차별과 억압을 경험한 아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러는 사이 매체에서 너도나도 내보내던 가십성 기사는 차차 줄어들었다. 아니 실은, 잊혀졌다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더 이상 홍석천이 ‘호모새끼’가 아니고 ‘게이’이며, 트렌스젠더는 하리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 버린 대중들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멋지게 먹혀들어갈 방송을 제작하는데 부침을 느낀 것이었을까.
어쨌든 ‘유행이고 겉멋이다’라고 결론지었던 방송이 헛소리였음을 증명하듯 아이들은 외려 이전 세대 레즈비언들보다 확고하게 정체화 했고, ‘틀린’것은 내가 아닌 포비아로 그득한 사회임을 스스로도 명확히 인지했다.
그런데 mbc에서 얼마 전 ‘이반 문화 확산’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내보낸 방송이 다시 한 번 동성애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길을 지나가는 짧은 머리의 10대 여성들을 무작위로 찍어 내보내고, 스스로를 긍정하고 있는 한 동성애자의 인터뷰 내용과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성애자의 인터뷰 내용을 방송의도에 맞추기 위해 교묘하게 편집하여 부정적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었으며, 범죄 사이트라도 취재하는 듯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근하고, 그 곳의 게시물과 사진을 마구 도용하여 방송에 내보냈다. 레즈비언 바 앞에서 어떠한 취재요청도 없이 후다닥 촬영을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몰래카메라를 이용하여 내부를 찍는다. 내부에 있는 동성애자들의 신변을 위해 해야 할 화면처리도 하지 않는다. 방송의 시간대와 러닝타임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2년 전, 햇수로는 3년 전의 ‘그것이 알고 싶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니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행사 포스터 앞에서 ‘버젓이 붙어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mbc쪽이 더하면 더했다. 2-3년의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각 분야에서 ‘인권’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고, 동성애자 인권운동 진영에서 역시 어느 단체 못지않은 무한한 노력을 기울여 활동해왔던 것을 생각하니,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4-5년 전 혹은 그보다 더 과거의 어디쯤에라도 뚝 떨구어졌나 싶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헌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이어, 동성애자들의 다양한 범주 내에서도 특히 10대 레즈비언들을 집중적으로 방영한 것은 과연 우연 중 우연인가. 수신확인이 되지 않는 수많은 레즈비언들의 항의메일들과 뉴스투데이 관련 담당자를 묻는 전화를 받던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한숨, ‘심지어’ 한 언론의 기사에서 ‘가치중립적인 보도’였다고 ‘버젓이’ 인터뷰해놓은 것, 그리고 지금껏 어떠한 사과도 아니 반응조차도 없는 그네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권리 침해에 대해 소송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어떤 액션을 취하기 취약한 층인 여성, 그 중에서도 동성애자, 또 그 중에서도 10대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것 이면에 효과적인 동성애자 탄압을 위한 교활하고 교묘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