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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07월 11일 1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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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

    [활동 후기] 책읽기 소모임 - 시작은 시스터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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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6월 9일 일요일
    회원 소모임 ‘시작은 책읽기’ 활동 후기

    나와 우리의 언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세계를 꿈꾸며
    지난 3월부터 꾸려온 회원 소모임 ‘시작은 책읽기’에서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책의 번역자 박미선 선생님을 초청해 함께 읽었습니다.
    마라사드 미아 미친 쇼어 슐라 원영 이슬 적분 팡 하랑 등 10명이 함께한
    따뜻하고 뜨거웠던 현장을 상담소 회원 쇼어님의 목소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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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박미선 번역가의 강연 후기


    쇼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회원, 소모임 ‘시작은 책읽기’ 회원)



    “우리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정의함으로써 탄생하는 것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시스터 아웃사이더»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 우리일 때, 유일한 그 얼굴로 알 수 없는 면면까지 포용하려 시선의 동심원을 키우는 일. 진실은 이해를 거치지 않고 오기도 해서, 그렇게 생기는 진심도 예기치 않아 적당히 고른 말로 붙들려 하면 의구심만 일으키는 이상한 구멍만 남아 버린다. 피할 수 없는 이런 시행착오를 동행하는 것이 책이고 그래서 홀로 책과 우리가 되는 것이 책읽기라면 함께 모여 읽어나가는 건 어떤 것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은 책읽기에 참석했다.
    역자 분의 친밀함을 자아내는 화술 덕분인지 회원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담화를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로드가 어떻게 이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 그녀의 삶과 시대 상황을 아우른 설명과 견해가 긴 시간 이어졌음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언급될 때 어렵고 낯설었던 점도 그것대로 좋을만큼, 뒷풀이 자리까지 내내 편안하고 즐거운, 같은 듯 다르게 나와 우리의 생각을 나누는 상담소의 따뜻한 첫인상을 닮은 모임이었다.

    읽어가는 주간에 평소처럼 다른 책과 병행하기가 어려워 산책을 했다. 이유는 잘 모르는 채로 걷다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면 또렷한 눈앞 풍경이 색채로 뭉개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곤 했다. 일어나 다시 산책로에 올라서던 어느날이었다. 맞은편 멀찍이 연로한 여자 분이 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시골 아랫마을에 살던 고모 같았다. 어릴 때 심심하면 다이얼을 돌려 할머니댁에 전화를 해대곤 했는데 할머니와의 친밀한 관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는 유일한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밭일에 바삐 일하다가도 벨이 울리면 하루에 몇 번이고 다정하게 응답하는 분은 고모였다. 전화번호를 잘못 알고 있던 것이다. 엄마가 대신 사과를 하는 동안 나는 나를 대하는 고모의 다정한 마음을 느끼며 동화책 같은 사람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제나 문을 열면 기대했던 모습으로 반겨주는 익숙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고. 그렇게 그녀와 마주치며 축구장을 둘러싼 경로를 몇 번쯤 돌고 있을 때, 만약 우리가 같은 방향을 걷고 있다면 시침과 분침 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지고 가로등이 더 밝게 켜졌다. 나는 부모가 아닌 어머니라 불리는 유대에서 생겨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틔운 움에서 상처와 아픔이 제거되는, 망상같으나 사실로 그러한 명백한 기록을 읽게된 것처럼 알게 되는 그런 느낌.
    어떤 결속은 사랑의 모습을 스스로 회복해나가기도 하는 것 같다. 자신의 지난 모든 일들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엄마는 추억하는 말미에 언제나 그 긴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얹곤 하신다. 엄마를 이루는 이야기의 처음에는 젖을 마실 수 없을만큼 너무 마르고 약해 방 한 구석에 밀어둔 아기의 죽지 않을만큼 조금씩 손짓하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다. 우리의 유년시절은 하나로 포개질만큼 닮았으면서도 결정적인 어느 순간 경로가 달라져 있어,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내며 이해해왔다. 요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싶은 분노의 거취를 궁금해 한다. 그러면 나는 구멍난 주머니 속을 살피듯 여러모로 낙오된 마음이 없음을 재확인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얘기했다. 지목할 수 조차 없던 일들까지. 그 무엇인가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우리로부터 듣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필요했다. ‘지각한 것들에 미처 질서를 부여하기도 전에 이렇게 인식할 수 있는’ ‘저주이자 축복’ 때문임을 이제는 안다.

    첫 장부터 가장 읽고 싶어 미뤄두던 글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내도록 이끄는 힘은 시인이기 때문이리라. 파편화된 것처럼 이곳 저곳을 따라다니다, 도중에는 헤집어진 기억과 감정 때문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한 종류로 가려낼 순 있으나 작가의 작품 하나하나마다 유일한 그래서 유다른 책들이 있다. 목소리가 들리는, 말을 다룬 자취를 따라가다 결국 기록하게 하는 좋은 책들. 그곳에 로드의 책을 꽂아두었다. 이 책으로 시작은 책읽기 모임을 시작하게 되어 감사하다.
    나와 우리를 이루는 잘못된 신화를 거부하고, 확신하며 선택하는 일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기쁨,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 결정된 한 순간 한 순간이 우리의 긴 기록으로 남겨짐을 생각한다. 이름 뒤에 기다리고 있는 유일한 이야기들. 그곳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냐는 물음에 그렇다 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슬픔을 닦고 분노를 잠재워 멍든 소녀를 일으키는, 이곳 상담소에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