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상담후기] keii

힘들었던 집단 상담
keii

남들 괴로운 일에 대해서는 낱낱이 귀담아 듣고 최대한 섬세하게 도와주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나의 일에 대해서만은 언제까지나 ‘그런 것쯤이야 문제없어’ 하는 식의 태도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자리다보니 이 집단 상담이란 것은 제게 무섭고 싫고 피하고 싶은 공간이었고 말이지요.

나는 내 얘기를 하기 싫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거든요.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도 내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이 이야긴가 아닌가 헷갈려서 결국 쉽게 포기해버리기도 일쑤였고요.

그렇다고 평소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거짓부렁이라거나 한 건 아닙니다. 난 다만, 소소한 일상의 대화가 아닌 깊은 속내를 다루는 이야기가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특히 나의 이야기가요. 타인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괜찮답니다. 기꺼이 귀기울이고 공들여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어요. 오래도록, 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희한하죠.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이토록 서투르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나 자신의 속내를 끊임없이 추슬러 가면서 해야하는 것이 상담일텐데요. 은밀한 욕구들, 해소되지 않는 공포심 같은 것들을 하나씩 찬찬히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텐데요.

한마디로 말해볼까요. 처음 해 본 것이지만, 이 집단 상담이란 것, 저를 엄청나게 괴롭혔습니다. 시치미 뚝 떼고 한 발짝 물러나 있고자 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집단 상담을 하는 내내 내 마음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정신 못 차리고 헤맸더랬습니다.

그래서 결국 무슨 생각을 했냐고요. 역설적이게도, ‘이것 참 사람들 이야기 끄집어내는데 꽤나 괜찮은 방법이구나’ 싶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말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 말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사람, 말하고 싶은지 아닌지조차 몰랐던 사람, 말했다가 낭패본 사람……이런 사람들이, 이런 레즈비언들이, 집단 상담이라는 공간 안에서 어쩌면 어렵게나마 입술을 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집단 상담이라는 게 평소에 여간해서는 자신의 심연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나도 끝내 거북살스러웠으면서도 그나마 이런 자리조차 없으면 어땠을까 싶었으니까요. 앞뒤 안 맞는 것 같지만 하여간 그랬습니다.

같이 했던 사람들과 집단을 이끌어준 루 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만 쓸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