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회 LGBTI 인권포럼 THE 더러운 커넥션 ‘레즈비언, 연결과 도전’ 세션 발제문

'왜 우리는 레즈비언으로 연결되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서 어떤 도전들을 해왔고 할것인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상임활동가 만다린
레즈비언 라디오 제작단 레주파의 하레님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여성모임의 박장군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상임활동가 만다린의 발제문을 전문 공유합니다.

2016년 제8회 LGBTI 인권포럼THE 더러운 커넥션세션 2-2 레즈비언, 연결과 도전
 
신입 상근자가 보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오늘과 내일
만다린 (한국레즈비언상담소)
 
1.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의 전환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1994년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끼리끼리>(이하 끼리끼리),
2000년 <한국여성이반커뮤니티센터 끼리끼리>, 그리고 2001년<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라는
단체명을 거쳐, 2005년 4월 활동가들의 고민을 모아 지금의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이하 상담소)라는 이름에 이르렀습니다.

활동가들은 오랜 시간 동안 단체의 활동 내용과 활동 체계/방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단체 명칭 및 위상에도 변화가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새로운 지형속의 변화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당시 활동가들은 ‘인권운동모임’이라는 위상을 ‘상담소’라는위상으로 전환하며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스스로 도맡고자 했습니다.

첫째, <끼리끼리> 당시 일상 업무로 줄곧 가져 온 상담 업무를
단체가 만들어 갈 운동의 핵심 위치로 거듭 자리매김함으로써 내용면이나 형식면에서
상담의 전문성 상담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했습니다.
<끼리끼리>의 역사가 곧 레즈비언 상담 역량 축적의 역사였다면
그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다져 나갈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했던 것입니다.

둘째, 레즈비언 상담을 레즈비언 운동의 가장 중요한 현장으로 보고
운동 이슈를 발굴해 내는데에 그 현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어떤 다른 기관에서도 마음을 놓고 자기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를 상담받을 수 없는 여성 이반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단체문턱 낮추기의 시도였다고 하겠습니다.
 
 
2. 우리는 왜 레즈비언 단체인가

상담소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라는 단체명을 매개로 하여 단체의 멤버십 범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상담소 차원에서 어떻게 재구성 할 것인가 대해서 지속적으로 여러 논의와 고민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 정의할 때
‘레즈비언’은 으레 ‘시스젠더 여성을 사랑하는 시스젠더 여성’으로 전제되곤 했습니다.
아니, 이는 과거형이라기보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상담소> 또한 <끼리끼리> 시절이나
그 이후 이러한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직된/한정된 틀 안에서는 배제되는 존재들이 분명히 생기게 됩니다.
하나의 예로, MTF여성 또는 시스젠더 여성이 시스젠더 여성 또는 MTF여성을 사랑하는 경우만 생각해 보더라도
레즈비언이라는 범주 등 정체성 범주들이 결코 고정된 게 아님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만큼 과연 누가 여성이고 누가 레즈비언인지 거듭 질문해야 할 필요성이 필연적 이지만
그 점을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 속에 녹여오지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다는 게 곧 레즈비언이라는 범주 자체를 아예 포기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여자 아니면 남자여야 한다는 남녀 이분법을 견고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가지 범주 바깥을 상상하고 싶어하며 상상하려 늘 애쓰지만 한국 사회는 그것을 쉽사리 용납하지 못하지요.
그게 현실이라면 운동의 출발점도 바로 그곳이 되어야 하지 아닐까 싶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면
여자로서 레즈비언으로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운동을 할 필요가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자라서 차별받고 레즈비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데 여자라는 정체성
그리고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여성들이 왜 차별의 대상이 되었는지 레즈비언들이 어쩌다 낙인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라도 이 범주들과 이 이름들을 통해 사회를 보는 일을 저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당연히 그저 이성애자이리라고 간주되기가 다반사인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기에
이성애자가 아닌 존재들이 자신들만의 이름을 가지지 못할 경우 이들의 존재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없는 게 되는 것 이지요.

그래서 ‘이름붙이기’는 중요합니다. 절실하게 이 이름이 필요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3. “벽장 이반을 위한 ‘노크 프로젝트’”의 기획의도

(아래는 노크프로젝트 자료집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노크 프로젝트는 ‘벽장이반,’ 즉 지지기반이 부족하고 스스로의 성정체성을 긍정하기 어려워하는
여성성소수자를 대상으로 기획된 자긍심 증진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벽장’의 경험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단일하지 않은 ‘벽장’의 경험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고립감’일 것입니다. <상담소>는 고립감으로 인한 괴로움을 겪고 있는 벽장이반에게
성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저마다의 지지망을 확충하는데 힘을 보태고자
노크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벽장이반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조모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어느 날 문득 든 게 아닙니다.
<상담소>는 여성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을 직접 듣는 다년간의 상담 활동을 통해 고립되어 있거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하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여성성소수자가 굉장히 많으며
이들에게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체득해왔습니다.

여전히 무수한 여성성소수자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내면화해
자신이 성소수자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고립되어 적절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상담활동을 통해 꾸준히 접하면서 <상담소>는 여성성소수자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당사자에게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성정체성에 대한 이해, 커밍아웃 방법, 여성성소수자로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법 등 상담 활동을 통해 쌓은
당사자로서의 삶의 지혜를 가장 절실한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겠다고 말입니다.
노크 프로젝트는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기획된 여성성소수자 대상 자긍심 향상 집단 프로그램으로,
고립된 여성성소수자 당사자들과 직접 만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노크프로젝트 프로그램 소개 (총 2부 8주차 집단 프로그램)
1부: 커밍아웃이나 호모포비아와 같이 성정체성에 대한 핵심적인 개념을 함께 배우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 자긍심 증진
 – ‘성정체성 바로 알기’(1부 1주차), ‘커밍아웃과아웃팅’(1부 2주차),
   ‘호모포비아와 이성애주의’(1부 3주차), ‘성소수자 권리 운동 역사 및 참여방법’(1부 4주차)
2부: 여성 성소수자로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지지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연습
 – ‘커뮤니티 문화와 관계감수성’(2부 1주차), ‘성정체성과사회생활’(2부 2주차),
   ‘성정체성과 원가족’(2부 3주차), ‘성정체성과 지지망 및 대안공동체’(2부 4주차)
 
 
4. 2016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도전

 2005년부터 수많은 여성성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상담소활동가들은 확장된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한 고민 또한 끊임없이 나누어 왔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단체의 지향점이라든가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 왔고,
이 과정 중에 <한국레즈비언상담소>라는 단체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담활동을 레즈비언인권운동의 방법 중 하나의 축으로 두고
여러 인권활동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에 대한 중요성을 전제한다면 이름을 변경하기 보다는
그에 걸맞는 가지각색의 활동들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이에 끊임없이 논의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부분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바이섹슈얼 당사자와 같은 경직된 레즈비언 정체성에서
이야기되기 어려운 여성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가열차게 고민하고자 합니다.
<상담소>의 상담활동에서는 이러한 지점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활동에 녹여내고 있지만
상담소의 전체적인 활동과 지향성에 있어서 더욱 논의의 장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기존의 레즈비언이라는 타이틀은 단체를 “폐쇄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레즈비언이 여성으로서 동성애자로서 젠더폭력과 호모포비아에 복합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무실 주소를 공개하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테러를 가하지는 않을까,
상근자들이 모두 여성인데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면 어쩌나와 같은 고민들은 단체의 문을 제한적으로만 열어두는 상태를 지속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상담소’라는 이름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일까요,
상담소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전문성에 대한 기대로 인해 압박감은 압박감대로 느끼는 한편
인권 단체라는 성격은 점점 흐릿해져 가는 것 같아 조급해지는 마음도 있습니다.
내담자는 꾸준히 찾아오는데 활동가는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그러한 인력 부족으로 인해 내실있는 연대활동보다는 살림살이 챙기기에 급급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끼리끼리> 시절,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단지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이란 이유로 모일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장소, 사랑방의 역할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상담소>는 보다 적극적으로 벽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벽장 밖에도 마음 편안히 머물 곳이 존재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요.
함께 역량을 강화하자고 손내밀기 위해서요.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오랫동안 빠끔히 열려 있던 상담소의 문 역시 천천히 더 많이 열어가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담소의 상근활동가를 비롯한 여러 활동가가 마주한 2016년의 도전이며,
이를 통해 저희는 레즈비언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저마다 여러 고민거리들을 안고있는 다양한 성소수자,
그리고 우리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배제/소외된 채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과 말입니다.
보다 넓게 연대하고 보다 많은 동지들과 함께 싸워나가는 <상담소>를 꿈꾸며 이만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본 발제문의 1절과 2절은 2010년<한국레즈비언상담소> 회원총회 첫 번째 논의 안건용문서인
“단체 이름, 멤버십, 활동 체계 변화: 필요한가?”(작성: 케이)라는 글을 토대로 하여 필자의 의견을 담은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