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이틀의 재발굴 영상자료 리뷰 2_1995년 12월 9일 KBS 아침방송 <독점여성>, 또 하나의 사랑 동성애

KBS 아침방송 <독점 여성>, ‘또 하나의 사랑 동성애’편을 보았다. <독점여성>은 영화평론가 유지나씨가 진행을 맡고 패널들 몇 명과 전문가 몇 명을 섭외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전화 연결로 시청자의 의견도 받고 모자라거나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자료화면으로 설명해주기도 했다. 또 하나의 사랑이라고 하니 꽤 그럴듯해 보였고, 평소 (잘은 모르지만)여성주의자라고 알고 있었던 유지나씨가 진행하는 방송이라 하니 기대가 됐다.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애인과 나란히 앉아 1995년 방송의 녹화 비디오테잎을 틀었다. 당시 대학 내 성소수자 모임을 처음으로 만들어 활동했던 임근준(aka 이정우)씨와 서동진씨, 그리고 그 당시에 활동했던 걸로 보이는 김동수라는 모델 한명이 별 이유 없이 패널로 출연했다(친구들 중 동성애자가 많다나. 알고 보니 이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고 그들은 자신들을 인정해 달라고 하는데, 그럼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가 이 날의 주제였다. 주제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종로 일대를 찍은 것으로 보이는 영상과 주인공이 동성애자(정확히는 게이)로 나오는 영화들의 몇 장면들을 보여줬다. 또 94년 친구사이의 탄생, 95년 당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동성애자들의 모임이 생긴 것을 언급하며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자들이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후. 여기까지 괜찮았다. 서동진X임근준씨와 유지나씨와의 멘트도 깔끔했다.

그러나 김동수씨와 유지나씨가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호흡곤란이 시작됐다.

“동성애자를 주위에서 많이 봐서 모셨는데, 겉으로 보면 김동수씨는 어떤 느낌으로 그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아아. 예. 지금 제 옆에 계신 분 두 분들이 말씀하셨는데요, 내가 동성애자이면서도 그게 아니라고 속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안이라든지, 옷차림이라든지, 그 목소리, 행동 같은 데서 대부분 알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는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인데, 그렇지만 인간으로 봐서는 내 삶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동성애) 못 해요. 프로포즈도 받아봤거든요? 여자한테.”

하지만 초반에 이런 바보 같은 말들은 그래도 상큼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서동진.임근준씨도 초반까지 계속 빵긋빵긋을 유지했다. 그런데 계속 맹추같은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더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전문가로는 전남대 심리학과 윤가현 교수와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준기씨가 나와 대화를 이어갔다. 윤가현 교수는 신뢰가 가는 목소리(?)로 사람들이(예를 들면 김동수씨) 동성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까주었…지적했다. 반면, 김준기씨는 약간 기(임근준X신동진+윤가현)에 눌려 버벅대고, 또 의학에서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위해 초대됐기 때문인지 단어 선택에 서툴렀다(아님 방송 울렁증?). 하지만 전달해야 할 확실한 사실을 전문가의 입으로 전달해주었다. 김준기씨의 말 도중 시청자들이 보기에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서는 윤가현 교수가 끼어들어 맘껏 흥분하며 바로잡아 주었다.

그 와중에 전화가 와서 웬 시청자와 전화연결을 했다(이놈의 방송은 참 정신이 없더라.) 그 시청자의 말들을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데, 한마디로 잡놈이었다.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멘붕 했을 거라 생각한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던 서동진X임근준씨. 강철 같은 멘탈 참 존경스럽습니다;) 이 전화통화 이후 더 달아오른 스튜디오 분위기는 직접 한번 체험해보시라!

그 뒤의 더 많은 전개들은 생략하겠다. 이것도 너무 자세히 적은 건 아니었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짧은 소감을 끝으로 이만 줄이겠다. 사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이후 이렇게나 타자가 된 느낌을 느껴본 적 있었나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이성애자들에 파묻혀 살 때에도, 내 입으로 나를 타자화하며 대화를 이어나갈 때에도 이만큼이나 내가 타자라고 느끼지 못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보면 가장 안전한(?) ‘한국 레즈비언 상담소’에서 완전히 타자된 경험을 하는 일. 희귀한 경험이다; 모두들 이 분위기를 느껴 봐야한다!

사족) 크리스마스 이브에ㅠㅠ 비디오테잎 뜨는 노동을 한다는 구실로 애인이랑 같이 있으려다 결국 보다가 숨 막혀서 애인이랑 싸우다시피 하고 일찌감치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