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이달의 상담: 정신 병원 강제 입원 위기의 레즈비언들

정신 병원 강제 입원 위기의 레즈비언들    |   케이(상담팀 활동가)
 

상담소는 가족들에 의해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될 위기에 직면한 레즈비언 내담자들의 사례를 그간 수차례 접해 왔습니다. 위기의 배경에는 대개 딸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딸의 동성 교제를 중단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님들이 존재합니다.
 
치료받자. 치료를 통해 “틀린” 레즈비언 정체성을 “바른” 이성애자 정체성으로 고치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입원시켜 버리겠다. 강제 입원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즉,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성애를 기어코 “고쳐놓고 말겠다”는 의지입니다. 동성애란 본질적으로 그르다는 잘못된 신념의 소산이지요. 많은 레즈비언들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본인이 원치 않을 뿐더러 효과도 없는 교정 치료의 길을 가거나 그것을 거부하고 정신 병원에 갇히는 두 가지의 폭력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고통받습니다.
 
너희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므로 당장 그 사람과 헤어져라. 결코 불가능한 관계이다. 가능해서는 안 되는 관계이다. 알아서 헤어지지 못하겠거든 정신 병원에 보내서라도 둘을 갈라 놓겠다. 치료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얼마나 믿는지와 무관하게, 어쨌든 강제 입원을 수단삼아 일단 당장의 관계를 끊어 놓고 보자는 의지입니다. 딸이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실질적으로 누구와 교제만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덜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 무엇으로도 억지로 벨 수 없건만, 강제 입원을 무기삼은 부모님의 강요에 애인과 생이별을 해야 할 레즈비언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정신 병원에 집어 넣어 버리겠다고 협박은 자꾸만 하되 실제로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치료 따위는 거부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데 아무리 부모일지언정 헤어지라니 웬말인가. 이렇게 버티다가 부모님이 고용한 사설구급대에 납치되듯 실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갇혀 버리는 레즈비언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신 병원에 가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호소한 내담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겁이 납니다. 이 분이 실제로 갇혀버렸을지도 모르니까요. 자기 애인이 끌려가고야 말았다는 사연을 전해오는 내담자와는 같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일단 폐쇄병동에 갇혀 버리면 당사자의 보호의무자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환자”와 접촉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상담소는 부모님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애인의 일로 힘들어 하는 내담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내담자 분이 애인이 입원된 병원을 상대로 인신보호구제청구 소송을 거는 등 우여곡절 끝에 애인이 퇴원을 하게 되어 다행히 두 분은 지금 다시 함께입니다. 그러나 애인이 몇 달에 걸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애인 뿐만 아니라 내담자 또한 몹시 지쳐있습니다.
 
동성애를 이유로 한 정신 병원 강제 입원이 가능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정신보건법 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이 존재합니다. 24조 1항은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성인까지도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만 있으면 누구든 입원이 가능토록 하고 있습니다. 2항은 당사자에게 입원 치료와 요양이 요구될 만큼의 정신질환 증상이 있거나, 당사자의 건강이나 안전, 그리고 타인의 안전에 필요하다는 전문의의 판단이 보호의무자 동의서에 첨부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진단 과정 없이도 보호의무자와 전문의가 자의적으로 합의한 바에 따라 간단히 정리되기 무척 쉬운 내용이자 절차입니다. 질병의 징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입원을 요하는 병증으로 둔갑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당사자가 보호의무자 마음에 안 들면 그것만으로도 정신 병원에 갇힐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동성애 자체는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 통계 분류(ICD)> 상의 질병 목록에서도 삭제된 상태이고 정신의학의 세계적인 추세도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간주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동성애” 자체가 강제 입원 진단 근거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주 가벼운 우울증도 충분히 강제 입원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으며, 진단 결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단을 하고자 하는 목적만으로도 강제 입원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부모님과 담당의가 “동성애”가 문제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다면 입원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입니다.
 
이같은 강제 입원 사례들을 적지 않게 접하며 우리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동성애자 정체성이나 동성 교제 사실이 애초에 강제 입원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되지 못하도록, 고쳐야 할 문제로 인식되지 않도록, 사회적 반(反) 호모포비아 캠페인을 더욱 힘있게, 구체적으로 벌여나가야겠다고 말입니다. 또 다짐합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소수자의 가족들이 가족구성원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길을 더 많이 마련하자고 말이지요. 그리고 거듭 실감합니다. 법적 보호의무자의 범위가 실제 생활을 함께 하는 동반자나 신뢰 관계에 있는 자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성에 대해서요. 가령 입원 당사자의 애인이나 두 사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상담원이 입원 당사자의 보호의무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혈연 가족의 횡포에 대항하고 개입할 여지가 존재할 터이니 말입니다. 정신보건법 개정에 힘을 보탤 방법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