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학생인권의 원칙을 누구 맘대로 훼손하는가? 문용린 서울교육감의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 규탄한다

학생인권의 원칙을 누구 맘대로 훼손하는가?

– 문용린 서울교육감의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 규탄한다 –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시키는 안을 들고 나왔다. 참으로 뻔뻔하다. 문용린 교육감은 그동안 교육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학생인권 보장의 의무도 외면하고, 유효한 자치법규인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해야 할 행정기관으로서의 의무도 방치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제는 소극적인 방치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을 훼손하고 저해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어떻게 만들어졌던가? 학생들이 십수년 간 외치고 요구해온, 절박한 학생인권의 내용들을 담아 만든 조례이다. 서울 시민들 10만명이 기꺼이 서명하여 만든 주민발의라는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발의된 조례이다. 서울시의회에서 여러 토론 끝에 조정을 거쳐서 통과된 조례이다. 이처럼 학생인권조례는 민주적이고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으며, 그 내용 역시 헌법과 법률, 국제인권조약에서 명시한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시킨다는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은 억지를 쓰며 학생인권조례를 휴지조각 취급을 하다가 2년만의 첫 번째 행보로 학생인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개악안을 발표하는 것은, 문용린 교육감이 스스로 학생인권을 부정하는 반교육적 인사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용린 교육감이 내놓은 개악안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책무 부분에서 학생에게만 구체적이고 과도한 의무를 열거하면서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를 상처 입히고 학생인권 제한의 근거들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의 학습권이나 교사의 수업권을 굳이 따로 강조한 것은, 수업과 교권을 신성시하며 학생의 인권을 규제해온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교사 수업권 등은 학생인권 침해로 보장되지 않으며, 학생인권 침해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학생의 의무 중에 특히, “학교 규범의 준수” 의무 등은 형식적인 합의 절차만 거치면 각종 학교 규칙들을 통해 학생인권을 제한하는 핑계가 될 위험성이 높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차별금지 조항에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 또는 출산”의 세 가지 차별금지 사유를 삭제하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항목을 차별금지 사유 예시에서 빼려는 것은 성소수자, 비혼모 학생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선언이나 다름없다.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성소수자, 비혼모 학생에 대한 차별금지를 빼려고 드는 것은 실체도 없는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로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폭력이다. 문용린 교육감의 안에서는 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구체적 지원 조치들이 보강되어 있으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내용이 빠짐으로써 이러한 지원 조치들이 소위 ‘알리바이’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임신 또는 출산”을 차별금지 사유에서는 제외하면서 “미혼모 학생”을 소수자 지원에 포함시킨 것은, 차별금지에 입각한 인권적 접근이 아닌 시혜와 동정의 시선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는 차별해도 된다는 이런 식의 조치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문용린 교육감의 개악안에서는 학생인권에 대해 진전되어온 여러 내용들을 후퇴시키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두발자유는 학생들이 15년이 넘게 주장해왔고 사회적으로도 여러번 논의가 된 사안이다. 경기도와 광주의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반영하여 일정하게 두발을 자유화시키는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서울의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를 반영하여 두발자유의 원칙을 확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악안에서는 학교 규칙에 의해 두발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려 하고 있다. 이는 2000년, 2005년에 학교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두발규정을 정하라고 한 교육부의 입장으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는 후퇴이다. 문용린 교육감은 상위법과의 충돌을 변명으로 삼지만, 시행령은 두발에 관한 사항을 학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일 뿐 규제를 해야 한다고 한 조항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두발에 관한 사항에 대한 인권 기준을 제시하는 자치 규칙으로, 상위법과 충돌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더 나아가 소지품검사에 대한 개악안은 거의 조례를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일괄 소지품검사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소지품검사 사유도 지나치게 넓어져서, 아무런 규제가 없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학생의 신체와 개성, 사생활의 자유를 전면 부정하는 이러한 내용은 인권조례가 아니라 인권침해조례에나 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그밖에도 조례안에는 학생인권옹호관을 학생인권위원회의 동의 절차 없이 교육감이 임명하게 한 것 등 옹호관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보호자의 체벌과 폭력을 금지한 것이나 소수자 학생의 지원 등 긍정적 내용도 있으나, 다른 부분에서 학생인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내용들 때문에 이런 긍정적 내용들도 ‘물타기’로 보일 지경이다. 정 학생인권조례를 보완하길 바란다면 학생인권의 원칙을 훼손하는 내용은 포기하고 학생인권조례를 보강하는 내용들만 살리는 것이 문용린 교육감이 학생인권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자세일 것이다.

 

우리는 문용린 교육감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한다. 학생인권조례 훼손 시도를 철회하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책무를 다 하라. 학생인권 보장은 UN아동권리협약, 초중등교육법 등에도 명시된 정부와 학교의 의무이며,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현재도 적법하고 효력이 있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토록 강조하는 ‘법과 원칙’을 지키는 길은 바로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학생인권은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선거철에 표심을 얻기 위해 훼손해도 될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학교 교육의 원칙이고 출발점이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민주주의의 결실이자 서울에서 학생인권의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대자보를 쓰는 등 평화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가 폭력을 당하고 징계 위기에 처한 사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 보장이라는 책무도 지키지 않으면서 조례를 개악할 궁리만 하는 교육청은 도대체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학생인권은 지금 훼방이 아니라 더 많은 보장과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만일 문용린 교육감이 많은 학생들의 자발적 운동과 주민발의, 서울시의회의 의결을 통해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온힘을 다할 것이다. 정당성도 없고 차별과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학생인권조례 훼손안은 결코 통과되어선 안 된다.

 

2013년 12월 30일

서울학생인권실현네트워크,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전교조 서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