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가 즐겁지 않아요. 불감증일까요.

[질문]
애인을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관계가 그리 즐겁지 않아요. 저는 아무것도 느끼질 못하겠어요. 이게 불감증인가요? 어떻게 하면 불감증을 없앨 수 있나요?

[답변]

성관계가 즐겁지 않아 고민을 하고 계시는 중이시군요. 애인을 사랑하고 있는데도 애인과의 성관계가 즐겁지 않다면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또 많이 속상하시기도 하고 그러시겠어요. 하지만 섹스가 전혀 즐겁지 않다고 해도 그런 본인이 이상한 사람인 것은 전혀 아니랍니다. 섹스가 즐겁지 않은 데는 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또 별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섹스라는 것 자체를 그닥 즐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몸의 느낌에 솔직하게 반응하며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점일 것이에요. 그러므로 섹스가 즐거우면 즐기면서 하면 되는 것이지만 즐겁지 않다면 일단 섹스를 하지 않는 것도 좋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성관계라 해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게 돼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요. 애인과 섹스를 한다는 것이 단순히 육체적인 쾌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요.

자, 그럼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해 보도록 할까요. '불감증' 이라는 이름의 의학적 증상은 사실 그 의미가 대단히 협소하답니다. 간단히 말해 '성욕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섹스를 할 때 쾌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 이 바로 '불감증' 이라는 의학적 증상의 의미이지요. 그래서, 섹스가 즐겁지 않은 경우, 왜 굳이 섹스 같은 것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는 경우 등을 다룰 때 이 '불감증' 이라는 낱말에 갇혀버리면 불충분한 이야기에만 머무를 수 있어요. 성욕 자체가 없는 것도 분명 섹스를 즐겁지 않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터이니까요.

성관계가 즐겁지 않다면, 성욕 자체가 없는 건지, 욕구는 충분히 있는데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는 건지, 욕구도 있고 흥분도 곧잘 하지만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등과 같은 여러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각각의 경우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된건지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이런 경우들이 '그 개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 는 걸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네요. 이 말은, 그런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강박적으로까지 노력할 필요는 결코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아요. 다만, 즐겁게 섹스하고 싶고, 그런 만족스러운 섹스를 통해 쾌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다면 그 때 여러가지 방법들을 모색해 볼 수 있을 터이지요.

그러면, 성관계를 즐기지 못하는 원인일 수 있는 몇가지 사실들에 대해 살펴볼까요. 성욕 자체가 없건, 자극에도 특별한 반응이 없건, 흥분을 하긴 하지만 오르가즘에는 이르지 못하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수 있어요. 본인이 성폭력과 같이 성적으로 불쾌하고 폭력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경우, 여성이 성적 욕구를 갖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지내온 경우, 애인이 본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멋대로 성관계를 이끌어왔을 경우 등이 바로 성관계를 즐거운 것으로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인일 확률이 높답니다. 그리고 우리들 레즈비언의 경우,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내면화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때문에도 섹스시 긴장할 수 있는 확률이 다분히 높은 것이고요.

이럴 경우 성관계를 할 때 자신의 신체에 오는 자극에 대해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수 있고,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의 수치심에 시달릴 수 있으며, 심지어 내 몸을 훼손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힐 수도 있겠지요. 그런 느낌들에 지배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현재진행중인 성관계에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내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그러므로 성관계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임할 수 있으려면, 섹스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나 자기 몸에 닿아오는 터치들에 이전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곧바로 상기하며 다시금 아파져 버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조금씩 완화시켜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은 본인이 오롯이 혼자 하기 어려운 것이라 애인을 비롯한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해요. 상담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지요.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페이스로 천천히 해 나가세요.

우선 애인에게 자기 자신의 느낌을 차분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전달해 보세요. 성관계 시 애인의 거칠기만 한 행동으로 불편하셨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꼭 말씀을 하시고요. 내 몸의 느낌을 보다 존중하는 방식으로 성관계를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애인에게 건네고 나면 두 분이 함께 이후에 어떻게 노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의논해 나갈 수 있을 것이에요.

성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애인과의 관계 자체가 위태로워 지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애인이라면 더더욱 상대방의 입장을 세심하게 살펴줘야 하는 법이니까요. 애인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할 것이고요. 그러한 노력들이 선행돼야만 연인 사이도 더욱 가깝고 풍요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내가 못나서 괜히 애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나 자신을 스스로 보살필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릴까 해요. 몸이 느낄 수 있는 성감은 충분히 계발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에요. 성관계에 대한 터부를 깨나가는 과정에서 점차로, 자기 몸이 어떨 때 흥분되고 기쁜지에 대해서 찾아나가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네요. 어떤 장소에서, 어떤 때에,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가지는게 더 편안하고 안심이 되고 좋은지에 대해서부터 내 몸이 어떤 자극에 민감한지에 이르기까지 만족스러운 섹스를 위해 생각해 볼꺼리들은 참으로 많답니다.

관련된 자료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들을 찾아 보시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신의 몸과 자신의 지난 경험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상담소에서도 도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