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제가 레즈비언인 걸 모르고 자꾸 남자와 선을 보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지요?

부모님이 제가 레즈비언인 걸 모르고 자꾸 남자와 선을 보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지요?
 
사귀는 사람이 있으나 아직은 못 보여 준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거나 부모님이 주선한 선자리에 나가긴 나가되 계속 상대를 퇴짜 놓으면서 부모님이 지칠 때까지 시간을 끌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뜻을 거역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돌파하고자 하는 당신의 의도대로만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부모님이 보기에는 내 자식이 결혼할 뜻이 전혀 없는 건 아닌가 싶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혼 사업은 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되겠지요. 물론 당신한테 이성의 임자가 나타날 리 만무하니 영문 모르는 부모님이 포기하시지 않는 한 결혼 사업과 실패만이 내내 이어질 터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의 결혼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남들 다 하는 결혼 내 자식도 당연히 해야 한다 생각하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가족이나 공동체를 꾸리는 삶에 대해 상상조차 못하는 경우입니다. 결혼을 해야만 성인으로서의 삶이 안정된다고 생각하여, 자식이 일가를 이루는 모습을 보는 일을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임무이자 권리라 생각하시는지도 모릅니다. 당신들 본인이 결혼을 통해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경험을 해 온 배경을 토대로 결혼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는 것일 수도 있지요. 이른바 혼인적령기를 넘긴 자녀에게 부모가 결혼 압박을 가할 때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는 이미 고려 사항이 아닌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사랑으로 결혼하는 게 아니라 결혼해서 서로 책임감 있게 협동하여 살아가는 거라고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지요.

이성애 결혼으로 대표되는 제도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 받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욕구와 자기 의지를 존중하고 굳게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름의 비혼 라이프를 계획하고, 실천합니다. 당신의 결혼을 당연하게 바라고 계실 부모님께 결혼하지 않는 삶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좋은 여러 가지 사례와 표현을 수집합니다. 만일 부모님을 대화로 납득시키기가 영 어렵다면,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고 이후부터 선자리를 포함해 결혼을 염두에 둔 어떠한 부모님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는 자세를 보입니다.
당장 부모님과의 갈등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성과의 제도 결혼을 전혀 원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드신 부모님과의 갈등도 두렵고 묘한 죄책감도 있고 하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선자리에도 나가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갈등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렇게 살 수 없다고 확신한다면, 원치 않는 일을 타의에 의해 계속 겪어야 하는 삶이 불편하고 불쾌하기가 그지없다면 부모님의 뜻에 따르려는 노력을 그만두세요. 만일 부모님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물리적으로 독립해 나와야 부모님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사실도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