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으로서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이혼준비 중인데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레즈비언으로서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이혼준비 중인데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결혼 후 성정체성을 새롭게 탐색하여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규정하게 되면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면,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근거로서도 커밍아웃이란 해야만 하는 것이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남편과 의가 좋았다면 법적 배우자이자 좋은 친구인 이 사람에게 당신의 삶을 고백하고 지지 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그래도 그간 맺어 온 부부로서의 인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있는 그대로 털어놓은 뒤 결혼을 깨는 쪽으로서의 책임을 감수하면서 관계를 정리해 나가고 싶은 심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입장에서는 좋은 뜻에서 선택한 커밍아웃이라 해도 일이 당신이 바라는 대로 진행되지만은 않을 가능성을 예상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아내로서는 자기가 커밍아웃을 하면 남편 쪽에서도 두 사람은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상황임을 납득할 거라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커밍아웃을 결혼 생활 유지의 불가능성으로 곧장 해석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남편도 많습니다. 아내의 레즈비언 정체성 자체나 아내가 다른 여자와 맺어 온 관계를 이혼 사유가 될 만큼 진지하고 결정적인 문제로 여기지 않는 남편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남편 본인이 좀 더 노력하거나 친정식구들이 개입하여 도와주면 아내를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도 상당합니다. 아내한테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과도하게 요구하면서 자녀를 이유로 들어 이혼을 거부하기도 하고요. 최악의 경우에는 이혼은 이혼대로 안 해주면서 아내의 성정체성을 자기 본가와 처가에 다 퍼뜨리거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화풀이 하는 남편들도 없지 않습니다. 레즈비언인 어머니의 손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고 자녀들을 아내로부터 떼어놓고자 하는 남편도 있습니다.

남편에게 커밍아웃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신을 말리려는 게 아닙니다. 그럴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커밍아웃을 할 경우 맞닥뜨릴지 모를 상황을 최대한 여러 각도에서 예상하고 준비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당신과 남편의 관계는 두 사람이 일구어 온 관계만의 고유한 성격을 갖고 있을 터입니다. 결국 당신의 커밍아웃 여부와 방식도 부부가 이제까지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지, 서로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게 좋겠지요. 커밍아웃도 이혼도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고비마다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다시 한국레즈비언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