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전부개정법률안 발의 기자회견문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전부개정법률안 발의 기자회견문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 감염인인권증진을 통한 예방 패러다임을 선포한다

오늘 우리는 기존법을 전면개정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에이즈 예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포하고자 한다.

HIV는 질병으로서의 고통뿐 아니라 그 원인과 결과에 있어서 사회적인 고통이 덧붙여지는 질병이다.

힘들게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던 직장에서 제 발로 직장을 걸어 나와야만 한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부모와 친구가 찾아 올까봐 연락조차 못한 채 혼자 삭혀야 한다.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고통 받을 가족들과 하루아침에 그런 고통의 근원이 되어버린 자신 때문에 울며, 단지 하나의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현실 때문에 숨죽이는 사람들, 그들은 “에이즈 환자”라고 불린다.

에이즈는 죽는 병이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을 죽이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그로인해 병든 사회이다.

한국에는 에이즈에 대한 법과 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다 되어가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은 수많은 눈물과 죽음을 방치해 왔다.

‘에이즈는 일상생활에서 접촉되는 것이 아니다’,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자’고 떠들어 대지만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안에서 감염인은 여전히 격리와 감시의 대상일 뿐이며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일 뿐이다. 그것은 정부가 에이즈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고 환자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법은 국가와 사회가 그 법의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과 태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그 제정부터 지금까지 강제검사와 전파매개행위 금지, 그리고 역학조사를 통한 실명파악 및 신고보고체계를 이용한 감시로 점철된 낡은 예방패러다임의 산물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한 틀에 입각한 모든 국가정책과 법정신은 감염인의 인권과 정상적 사회생활을 중대히 침해함은 물론이고 에이즈의 예방을 위한 방해물이었다는 것이 최근 국제사회의 공통적인 견해이며, 무엇보다도 그로 인해 희생당해온 감염인들이 그 법의 부당함을 증명한다.

새롭게 발의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전부개정안’은 이러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감염인의 인권을 증진하는 것이 곧 예방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천명한다.

에이즈는 예방되고 적절한 약물과 치료로 관리되는 질환이며, 일상적 전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다면 감염인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감염인이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존중받는 존재임을 부각되어야 하고 감염인이 중심이 되는 예방과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 법을 통해서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더불어 살아가고 배려하는 방식을 의료인은 물론이고 일반국민에게 홍보하고 교육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염사실을 자발적으로 확인하고 예방에 힘쓰도록 익명검사와 익명보고를 제도화할 기초를 다질 것이다. 또한 감염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시키는 기존법의 독소조항을 없애고 이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제몫을 다하도록 준비하는 지원을 강화할 것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 대한 전면적 개정은 단지 에이즈환자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은 단지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사람들을 취약하게 하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고, 질병을 가진 사람은 등급이 매겨지는 존재가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먼저 나서서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예방과 치료의 혜택을 누구라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며, 질병으로 인해 직장을 잃고, 파산하며, 가족이 해체되는 일이 없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회적 환경이 그 질병에 취약하도록 만드는가를 연구하고 그것을 없애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법은 준비와 발의의 모든 과정에서 법률전문가와 정책전문가 뿐만 아니라 감염인 단체와 인권단체 및 보건의료단체 그리고 관심을 가진 모든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만들어 졌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및 감염인인권증진에 관한 이 개정법률안의 발의는 감염인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위대한 첫발이며,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한걸음이 될 것이다.

2006년 11월 6일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국회의원 현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