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대, 불편함이 씁쓸하지 않기를

:: 인권오름 ::

_ 2006년 8월 8일
_ 케이, 나루

연대, 불편함이 씁쓸하지 않기를

참으로 어려운 주제의 글을 청탁 받았습니다. 인권 운동 진영에서 연대 활동을 하며 느끼는 불편함, 어려움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이었죠. 이와 같은 주제의 글 섭외는 우리 활동가들 마음속에 새삼 무거운 돌 하나를 얹어주었답니다. 자주 얼굴 맞대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느꼈던 점들을 털어놓는 것이 이 글의 과제였으니까요. 수시로 만나는 다른 단체의 활동가들이 우리가 내놓은 이 글을 보고 혹여 심기가 불편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을 하면서 마음 한 편이 쓸쓸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걱정을 사서 할 정도로 자신감 없는 모습.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 걸까요, 우리는.

우리는 연대 활동의 장 안에서 늘 무척 많이 위축돼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활기차고 당당해 보인다 해도 그 모습은 어쩌면 움츠러드는 우리의 마음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연대 활동에 임하려는 노력을 늘 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레즈비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즈비언들인 우리는 성소수자 진영 바깥의 인권 운동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이 그 자체로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케이나 나루 같은 경우 이미 몇 년 째 타 단체 활동가들과 접촉하며 연대 활동을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 단체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적잖이 부담스럽습니다. 수차례의 만남을 통해 몇몇 활동가들과 나름대로 친숙해졌다 싶으면 어느새 또 한 번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연대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레즈비언들에게 충분히 준비된 커밍아웃을 권장하는 활동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자신들에게 커밍아웃의 스트레스는 일상적인 피로로 누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스트레스의 탓을 다른 인권 단체 활동가들에게 돌리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어요. 커밍아웃의 부담과 책임은 기본적으로 레즈비언인 나 자신이 질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인권 단체 활동가들의 상당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대끼는 이들 중 가장 동성애자 정체성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에 속합니다. 노골적인 혐오와 적대는 이제 연대 활동의 장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인권운동 진영의 주류와 비주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까지도 연대 활동이 쉽지 않은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로 인권운동 진영의 주류와 비주류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우리 단체는 엄연히 비주류에 속하는 이슈를 다루는 단체죠. 주류적 운동 이슈와 비주류적 운동 이슈가 갈리는 지점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높고, 해당 이슈 관련 활동에 대한 소위 주요 단체들의 결합 수위가 일정 정도 이상이며, 해당 이슈 관련 활동의 홍보 물량이 상당할 경우 그 이슈는 다른 이슈를 압도해 버리는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요.

평택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평택은 현재 상황이 너무나 첨예하게 돌아가고 있는 곳이고 주민들이 무척 많이 고통받고 있는데다가 공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물리적, 경제적 힘이 많이 부친다는 소식 또한 들려오며 투쟁에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쉼 없이 다치거나 연행되고 있기에 평택 투쟁을 예로 들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더욱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이는 평택 투쟁에 대한 쓴 소리라기보다 우리의 운동 같이 ‘소소한’ 운동들은 평택 투쟁과 같은 ‘굵직한’ 정세 뒤로 자연스레 밀려나 버리는 현실에 대한 개탄일 뿐이니 말이에요.

우리는 연일 보도되는 폭력의 현장이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가슴 아프고 무섭습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 곳을 드나들며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활동가들 걱정에 종교도 없으면서 기도 같은 걸 해보기도 했습니다. 평택의 문제는 평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고 그 사람들 가운데 우리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마음으로, 연대 성명을 하는 것으로, 현장에 미처 함께 하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평택에 대한 관심을 작게나마 꾸준히 표현해 왔습니다.

평택 투쟁이라는 모두의 화제?

그렇지만 평택 투쟁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연대체 회의를 위해 활동가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평택 이야기‘만’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직접 평택에 결합하는 이들이 지쳐 하고 힘겨워 하는 모습을 앞에 두고 우리들이 느낀 애매한 불편함을 콕 짚어 문제제기 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공통된 화제로 열띤 얘기를 나누고 있는 활동가들 사이에 앉아 소외감과 그 소외감에 대한 수치심에 무척 불편한 심정이 되었지만, 그저 꾹꾹 버틸 뿐이었죠.

그럴 때면 레즈비언 관련 활동만 하는 우리들은 과연 ‘레즈비언 관련 활동만 하는, 그래서 폭넓지 못하고 편협한 활동가들인 걸까?’하고 끊임없이 자문하게 됩니다.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자격지심에 발동이 걸리는 순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이건 아니다’로 내려지곤 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으나,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단체 활동가들은 전하고 싶었던 레즈비언 이슈, 함께 나누어보고자 들고 왔던 이야깃거리들을 슬그머니 목 안으로 삼키게 되니까요. 평택 투쟁의 정세가 다른 단체 활동가들 사이에 앉아 있던 우리 활동가들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경험이었다고 할까요.

투쟁 정세에 존재감마처 삼켜지는듯한 불편한 느낌…

위에 언급한 경우는 실제로 하나의 예일 뿐, 위와 유사한 상황이 연대체 모임 중 실로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꼭 평택과 관련하지 않아서라도 말이지요. 그럴 때면 우리는 무척 착잡해 집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으면서도 마음이 썩 편안치는 않아요. 레즈비언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라면, 설사 그 적대로 인해 마음이 두렵고 불편해지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즈비언 이슈가 전혀 나오지 않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미묘하게 불편해지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내가 느낀 불편함이 정당한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그 자리를 파하기 일쑤입니다. 내가 제대로 처신 못한 게 없는가 하는 점부터 살피는 나를 보며 씁쓸해 했던 기억이 얼마나 많던지요.

지면의 제한이 있어, 다른 몇 가지 불편함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이야기를 쓰는데도 벅차 지면의 제한이 없었다 한들 그것들을 다 담아내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저희의 고민을 나누도록 할게요. 우리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실체, 그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치는 작업을 더욱 섬세하게 한 뒤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만 줄일게요.

[덧붙임] 이 글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활동가들이 같이 나눈 이야기를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 케이와 나루 님이 옮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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