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생리를 비롯해 여자 몸이 너무 싫어요.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가슴, 생리를 비롯해 여자 몸이 너무 싫어요.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여자가 아니라서 여자 몸이 싫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기는 여자가 아닌데 몸은 이른바 여성형이라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자기 몸의 여성적 특징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이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기 몸의 여성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이 사람이 여자라는 증거인 것도 아니고요. 본인이 여자라는 사실은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가슴과 생리는 싫다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본인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여성형 가슴을 지니고 생리를 하는 몸을 큰 거부감 없이 자기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요.

여성형 가슴을 지니고 생리를 하는 자기 몸을 싫어하고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와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짚어 자기 사연을 풀어내려면 결국 당신이 직접 스스로를 탐색해 나가야 합니다. 왜 이렇게 내 몸이 지닌 소위 여성적 특징이 싫은지를 더 상세히 물어야 합니다. 자기가 여자라 생각하는지 남자라 생각하는지, 둘 다라 생각하는지 둘 다 아니라 생각하는지 둘 사이를 오간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고요.

우선 싫은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면 어떨까요. 자기 몸이 거북하고 싫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 싫은 만큼 싫어해도 괜찮습니다. 싫은 이유를 찾는 작업도 싫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해 나가는 거예요. 가볍게 넘기거나 묻어둘 이유란 없습니다. 무슨 이유든 중요해요. 어떤 이유라도 정당합니다. 하나하나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 보아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른바 여성형 몸을 가진 이가 자기 몸을 긍정하기 참 어렵게 만드는 사회에서 삽니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몸에 와서 꽂히는 시선 폭력을 경험합니다. 생리는 부끄러운 것이라 숨겨야 옳다고 배웁니다. 생리대는 지금도 예사로 검정 비닐봉투에 담기지요. 게다가 생리통에 따라오는 우울감과 무력감은 여성을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로 비하하며 조롱하는 근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가슴과 생리를 기꺼이 긍정할 사람이 어떻게 그리 쉽게 존재하겠어요.

당신에게 무작정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긍정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 자체가 객관적으로 잘못된 게 아니라 해도, 가슴이 자라고 생리혈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라 해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불편과 통증 만으로 당사자는 가슴과 생리가 충분히 싫을 수 있습니다. 몹시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때 그러한 괴로움까지도 온전히 긍정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 터입니다.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에게 남이 쉽게 던질 말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내 존재가 깃든 곳으로서의 몸, 내가 지니고 살아가며 세상과 부대끼는 현장으로서의 몸, 바로 그 몸이 싫어서 내내 감당이 안 되고 그래서 겪는 고통이 계속해서 너무 깊으면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겠지요. 덜 힘들게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가슴과 생리가 싫다는 마음을 인정하면서도 되도록 덜 부대끼면서 살 방법을 적극적으로 궁리해 보기를 권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가슴 실루엣이 나오도록 옷을 입는 요령을 익힙니다. 실제로 생리통을 줄일 방법을 찾아봅니다. 생리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행동에 참여합니다.

지금까지는 가슴과 생리 등 이른바 여자 몸의 특징이 너무 싫다는 호소에 집중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그런 거냐는 질문으로 돌아갈 차례입니다. 몸이 겪는 불편함이나 통증, 여성형 신체 특징에 대한 비하와 낙인 등이 당사자로 하여금 가슴과 생리를 싫어하도록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여자 몸과 남자 몸을 구분하여 여자 몸이 갖는 특징과 남자 몸이 갖는 특징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여자 몸이 갖는 특징 중 대표적이라 여겨지는 요소가 바로 여성형 가슴과 생리지요. 이때 자기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자기는 남자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가슴이 나오고 생리를 하는 자기 몸, 즉, 소위 여성형 몸의 특징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살아가기가 쉬울까요. 대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여성형 가슴을 가졌고 생리를 한다고 해서 그게 곧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남자라도 충분히 그러한 몸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부대끼지 않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이들도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여자가 아닌 자신이 여성형 몸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영 어색하거나 남자인 자신이 여성형 몸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도통 말이 안 된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몹시 괴로울 가능성이 큽니다. 커져 버린 가슴이 물리적으로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고 생리 전 증후군이나 생리 중 통증이 그리 심하지 않다 하더라도, 가슴이 나왔다는 사실과 생리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자기 몸과 자기 성별 간의 괴리를 끊임없이 느껴야 하니까요. 또한 설령 당사자 본인은 여성형 몸을 가진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해도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무리 없이 남성으로 통하려면 불가피하게 최대한 남성형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나는 왜 가슴과 생리가 싫은가, 나는 대체 어떤 성별의 사람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단단히 쥐고 꾸준히 자기 탐색의 과정을 거쳐 나가기를 권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해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몸과 어떻게 관계 맺으면 좋을지에 대해 서서히 해답을 찾게 될 거예요. 가슴이나 생리를 인정하고 되도록 잘 받아들일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가야 할 지, 두 가지 신체 요소 모두를 제대로 거부하고 의료적 조치를 동원하여 몸의 변형을 꾀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차츰 더 분명하게 결정하게 될 테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