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2005-05-31

유약한 아티스트들이 메마르고 이해심 없는 여자들을 만난 것—그것이 메롱과 나의 부모들이다. 우리는 그런 부모의 아이들이다. 때로 쌍둥이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일까?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는다. 우리는 그런 부모의 아이들이구나!

나는 메마른 아티스트, 너는 다감하고 애정 표현이 풍부하지만 아티스트를 이해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고집쟁이다.

묘한 조합이지.

메롱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물론 한편으로는 일도 바쁘고 그 와중에 메롱과 데이트 하느라 시간이 더 없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쓰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검열 때문이다.

빠알간 뽀의 일기를 쓰면서 가장 노력하고 애쓴 것이 최대한 검열을 의식하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메롱과 시간을 보낼수록 나의 검열은 심해지고 있다.

너에게 인정받는 것이 나에게 왜 이렇게나 중요한가?

우리가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나는 너에게 왜 이토록 인정받고자 하는가?

메롱에게 매달린 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해서 나는 글을 쓰기가 하루하루 힘들다. 말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다. 움츠러든다. 메롱이 읽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의심받는 범죄자가 된 느낌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다. 하지만 메롱이 뭐라고 한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쓰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다. 사랑 때문에 쓰지 못한다면 나는 그 사랑을 원망할 것이다. 그건 우습지, 원망할 것은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칼날은 메롱을 향할 것이다.

얼마 전에 티비에서 ‘사별’이라는 다큐를 하는 것을 끝부분만 잠깐 봤다. 메롱이 자기가 사는 집으로 출발한 뒤에 티비를 켜니 다큐에 출연한 여러 사람이 번갈아 나와서 꼭 하고 싶은 한마디씩을 남기고 있었다. 서영은이 나왔다. 사랑에 빠진 여자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라는 자막이 보였다. ‘사람들은 김동리 선생과 나의 만남을 운명적이 만남이라고 하지만, 나는 예술을 한답시고 얼마나 그 사랑에 소홀했는지, 만약 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예술을 위해서 사랑을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 뭐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서영은 선생과 김동리 선생의 이야기는 ‘한 남자를 사랑했네’라는 서영은 선생의 자서전을 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

예술을 한답시고 사랑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 는 말이 내 귀에는 그만큼 그립소, 하는 사부가로 들렸다. 치열한 예술혼은 서영은 선생이 김동리 선생을 사랑한 방법이었다.

나에게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은, 이반, 레즈비언, 양성애자, 30대, 대한민국의 많이 배우고 가난한 여자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써야 한다고 믿는다.

네게 모든 면에서 100 퍼센트 이해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과 숨을 쉬듯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더 오랫동안 갈팡질팡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래도 써야 한다. 쓰는 것은 빚을 갚은 일이다. 나를 이때까지, 이날입때 돌봐준 세상에 빚을 갚는 방법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반
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