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아줌마§포르노§] 제4화. 크기의 문제


제 4화. 크기의 문제
 
크기는 중요한 문제다.
아줌마, 부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명예남성 (헉!) 등 여러 가지 정체성의 성긴 그물망 사이에서 
아직 '포지셔닝' 중으로 보이는 나의 애인 크리스가 어느 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한채윤 씨에게 물었다. '채윤 씨와 채윤 씨의 애인은 팸, 부치 정체성이 있는가?' 
뭐 이런 질문이었을까? 
내가 한 질문이 아니라서 정확히 읊기는 어려운데, 전해 들은 답은 기억이 난다. 
'내(한채윤)가 애인보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는 나를 부치로 보는 것 같다.' 
그 말에 크리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마고가 나보다 더 크지만 사람들은 마고를 팸으로 보는 것 같다.'
대화를 듣고 낄낄 대고 웃었다.
 
올해 인권영화제에서 '몰몬 발의안'이란 다큐멘타리를 보는데
몰몬 교를 믿는 게이 커플과 그들의 가족이 인터뷰한 내용이 여러 번 나왔다.
게이 커플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몇 살쯤 어려 보이고 몸집도 작았다. 
두 사람이 시위에 나서면 덩치가 크고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쪽이 크게 항의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소파에 앉아 인터뷰를 할 때는 시종일관 몸이 크고 나이가 들어보이는 사람이 작고 
어려 보이는, 심지어 더 창백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을 감싸듯이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말하는 모습과 태도에서도 몸이 큰 사람이 좀 더 보호자연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렇구나 하면서 봤다.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차세기연 회원 한 사람이 그들의 모습이 이성애자 즉, 남녀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 너무 불편했다고 말할 때까지는.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곰곰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은 보호자연하고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왜소한 그 게이 커플의 모습에서
'남녀'가 보였고 그 모습이 곧장 '가부장제도의 남녀 역할 분담 및 남녀 관계'로 이어져서 아마도 
그 게이 커플의 관계가 '가부장제도의 남녀 관계'와 일치하리라는 추측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에게는 크기와 자세가 비교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딱히 '가부장제의 남녀 관계'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두 사람의 겉모습이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특별히 중요하거나 의미 있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 얘기를 했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아내와 남편, 여성스러운 여자와 호인다운 남자이지만,
사실은 집에서는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버지이고 과감한 사람은 어머니라고.
집을 사든 사업을 벌이든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보였을 지는 모르지만
사실 일을 '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떳떳하게 먹고 살 직업이 있으면
네가 혼인하지 않아도 상관 않겠다고 애저녁에 선언한 것도 어머니였다.
어리석은 나는 청춘의 절반을 따듯한 '대체' 어머니를 찾아 헤매기는 했으나......
 
보이는 모습이 두 사람이 맺는 관계 또는 역할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두 사람이 있어도
사람들은 늘 좀 더 여성스러운 사람과 좀 더 남성스러운 사람을 가려내기 마련이다. 
비교해서 보자면 그런 '보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동성애 커플이라면 사람들은 기를 쓰고,
어쩌면 본능적으로 좀 더 여성스러운 사람과 비교적 남성스러운 사람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일종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작동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본능적인 반응이란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한 사람이 동성애자 커플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것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 
동성애는 이성애에 대항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