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아줌마§포르노§] 제3화. 똥에 집착한 이야기


제3화. 똥에 집착한 이야기
 
나는 똥을 누면 항상 어떻게 생겼나 한 번 본다.
유심히 관찰까지는 안 하더라도 한 번은 본다.
애인의 이름은 크리스인데, 크리스는 절대로 안 본다고 한다.
똥을 보면 밥 먹을 때 생각나서 볼 수가 없다나?
나이가 나이이므로 똥 색깔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크리스에게 똥은 더러운 거다.
“뭐가 더러워? 뱃속에 있거든!”
그래, 내 뱃속에 똥 있다.
누군가 이 말을 했을 때 난 마치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깜짝 놀랐다.
사람은 뱃속에 똥이 들었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 마치 내 뱃속에 똥 없다는 식으로.
 
청량리 역 근처에서 택시를 탔다가 붉은 등이 켜진 쇼윈도, 성인. 여자. 사람. 을 ‘보여주는’ 쇼윈도가 줄줄이 늘어선 길을 지났다. 그건 아마 20대의 일이었던 듯.
그게 처음이었을까?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모래내 근처에도 저녁이 되면 문을 열고 실내에는 붉은 등을 켜놓고
문 앞에는 무심한 듯 보이는 여자들이 왔다갔다 하거나 앉아 있는 술집들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몇 년 간 지나다니던 아현동 고개에도 그런 집들은 줄지어 있었다.
4년 전에 용산구에 이사 왔다. 용산역을 이용하게 되고
그 역에 있는 쇼핑센터나 대형마트에 자주 갔지만, 왔다갔다 하는 길에 보이는 성인영화관의 낡은 간판,
마치 70년대를 재현해 놓은 것 같은 간판을 보면서 별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버스를 한 정거장 먼저 내리는 바람에 걸어서
‘청소년 금지구역’이라고 써있는 검은 커튼 앞을 지나기 전까지는.
 
저 앞에는 휘황한 용산역사가 있다.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로, 기차와 전철이 환승하는 역이면서 동시에 지하에는 대형마트가 있고
지상에는 극장, 병원, 서점, 기타 등등 없는 것 없이 갖춰 놓은 쇼핑센터이다.
길을 건너서 신용산 역이 있는 한강대로에 나가도 현대식 건물 일색이다.
그런데 그 신용산 역과 용산 역 사이에 검은 커튼이 양쪽에 드리워진 골목이 하나 있다.
붉은 등을 켠 쇼윈도가 늘어선 골목이다. 그 골목을 의식하게 되자 그 후로는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젊은 남자를 붙잡는 ‘삐끼’ 아주머니들도 보였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그 동안 저런 쇼윈도와 저 쇼윈도 속에 있는 사람들, 그 밖에 또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듯이 살아왔구나.’ 나는 마치 그들이 없다는 것처럼. 다 큰 성인이 사창가도, 군인도, 전쟁도, 강간도, 폭력도, 인종말살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북한도 없는 것처럼 산다는 건 토 나오는 일이다.
 
‘퀴어 있다’라는 그룹의 활동이 화제가 됐다.
트위터를 통해 5월 들어 여기 저기에 “여기 레즈비언 있다”라고 씌여 있는 포스터를 붙이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됐다.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라는 그룹에서는 여러 사람의 불평이 쏟아져 들어온다며
‘우리가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퀴어 있다’ 또는 ‘여기 레즈비언 있다’라는 문장은 그대로 성명(聲明)이 되었다. 저항이 되었다.
비가시성,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동시에 눈에 띄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눈에 띄지 않으면 없는 사람 취급이고 눈에 띄면 차별이다.

진퇴양난.

그래도 난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오랫동안 커밍아웃하고자 했지만 하지 못했던두 모임의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쩐지 커밍아웃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눈에 띄지 않으면 없는 사람 취급이고 눈에 띄면 차별이다. 하지만 결국은 자꾸 눈에 띄게 되어서, 자꾸 드러내서, 자꾸 들추어서, 사람들 속에 어느 정도는 동성애적/양성애적 감성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들추어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면 성차별, 성정체성 차별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에 다들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검은 고무 커튼이 드리워진 ‘청소년 금지구역’이 당당하게 펼쳐져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 안에는 성매매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먹이사슬은 보이는 것보다 좀 더 크고 복잡하다.
김강자 경장이 전국의 성매매집결지를 없애려고 할 때, ‘재경부에서 말은 못하고 속앓이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성매매 산업이(그렇다, ‘산업’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몇 퍼센트인데, 성매매집결지를 다 없애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가 떨어지고 어쩌고 하는 기사였다.
그렇다. 그건 신문 기사였다. 아마도 동아일보 기사였을 것이다.
 
내가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라가 문제?
아니, 그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 못하는 내가 더 문제다.
 
똥 얘기에서 비롯된 것이 오해를 살까 걱정도 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눈 뜬 장님 되기는 순식간이다.
또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너무 오래된 일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안’ 보고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