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아줌마§포르노§] 제1화. 마고할미 또는 거인의 전설


제1화. 마고할미 또는 거인의 전설

세상을 만들었던 거인여신 마고할미는 세상이 가부장제에 물들자 사람의 목숨을 점지하는 삼신할미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다시, 마고할미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란 나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창세신화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있다고 하니 놀랄만도 하다.
창세신화같이 중요한 것을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깜짝 놀랐다.
(지금은 달라졌으려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1991년이다. 설마 지금 깜짝 놀라신 거…?)
 
난 날 때부터 컸다. 사실 당연하다. 예정일보다 일주일인지 열흘 정도 늦게 나왔기 때문이다.
엄마 뱃속 아기들은 막달에 엄청 커진다고 한다. 그 막달을 일주일인지 열흘이나 연장했으니
난 커질만 했다. 태어났을 때 이미 머리카락도 새카맣게 나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나 표정을 생각해 보면 나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발육이 빨라서 한 돌이 됐을 때는 심지어 내 돌떡 접시를 날랐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 여러 번 확인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구체적인 장면이 추가되는 걸 보면…)
 
유치원 들어갈 때는 다른 애들보다 머리통 한 개만큼 더 컸던 거 같다.
애들이 돼지라고 놀린다고 울면서 집에 가면 우리 어머니는 자애롭게 ‘넌 뚱뚱하지 않아’라고 말씀해 주는 대신에 ‘무시해!’라고 강하게 말했다. 무시는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뚱뚱하다는 오해는 풀 수 없었다.
사춘기 이전에는 그저 또래보다 머리통 한 개 정도 키가 크고 골격이 좋은 아이에 불과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나는 정말로 뚱뚱해졌다. 키는 작지 않은 편인 164cm에서 멈췄다. 잘 늘린 날은 164.5cm 정도 나온 적도 있는 것 같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는데 천장이 머리에 닿을 것 같다.
내가 거인이 된 느낌이다. (아니면 주사?) 길을 걸어가는데 왠지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내 몸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부적절하게 크다. 아, 이 부적절한 느낌! 죽을 거 같다…
 
다행히 그런 느낌들을 헤치고 (사실이 아니야, 사실이 아니야, 나는 거인이 아니야,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 뿐이야,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아, 사람들은 나한테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어…)
나는 살아 남았다. 그리고 어느 날 거인 여신의 전설을 읽는다. 거인 여신, 창세신. 바로 이거다!
 
옛날 고리적에 사람들이 세상을 지은 거인 여신을 상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얼마후에 닉네임이 필요한 때가 다가오자 거인 여신의 이름을 내 이름 삼았다.
 
신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여자에게 그런 권능이 있다는 상상력 또는 현실인식(고대인의 현실인식)을 상기하고 싶다.
내 몸이 큰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도 상기하고 싶다. 내 키가 크거나 내 몸이 큰 것은 잘못이 아니다.
여자의 몸이나 키가 크면 불편한 건 가부장제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마고라는 이름을 쓰는 레즈비언이다.
마고라는 이름은 나의 레즈비언 커뮤니티 생활과 함께 시작되었다.
때로는 이 이름과 함께, 때로는 이 이름을 멀리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마고가 할머니인 것도 마음에 든다. 할머니는 남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다.
고대에는 (물론 현대도 마찬가지인 듯, 화장에 관한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을 보아하니)
생산력이 곧 아름다움이었다.
여신은 스스로 할머니가 되어 세상을 낳았고, 할머니처럼 거칠 것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 몸은 여전히 크지만, 이제는 좀 더 ‘작은’ 이름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