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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04월 14일 03시 30분
  • 뜨거운 감자

    자료상자

    [기고] 레즈비언의 삶, 희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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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2005년 6월 7일
    _ 수연(시로)

     레즈비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야말로 평생에 걸쳐 차별을 겪는다. 그래서 고통과 슬픔, 분노가 마치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면서 살아간다. 우리에게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은 단지 행복하기 위한 ‘삶의 진실’일 뿐인데, 세상은 그것에 너무 많은 대가를 바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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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탄생-아버지가 미리 준비해 둔 금줄에 고추가 빠지는 순간-이후 나의 여성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미리 준비해둔 분홍색 옷을 나에게 입히고, 예쁜 마론 인형과 소꿉놀이 장난감을 사주셨다.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싶은 나는 불편한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놀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영심이가 아닌 준철이와 짝을 지어줬다. 준철이도 철이도 모두 영심이한테 뽀뽀를 하는데, 나는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배우는 국어 교과서에는 철수와 영희가 나와서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내가 영심이랑 “안녕?”하는 것보다 철수랑 “안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가?‘하고 생각했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영심이를 향한 내 감정이 사랑인 것을 알았다. 영심이에게 사랑한다고 편지를 썼더니, 영심이가 나에게 “변태”라고 욕을 했다. 친구들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선생님은 나더러 친구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다. 나는 너무 괴로워서 자해를 하기 시작했고, 자살을 기도했다. 엄마는 나를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꺼야”라고 말해주셨는데, ‘곧 내 병이 고쳐진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빨리 어른이 되서 정상이 되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 말처럼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과 순심이를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병이 덜 나은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순심이와 뽀뽀도 하고 늘 함께 다녔다. 순심이는 자기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행복했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조심했는데, 순심이와 뽀뽀하는 것을 영철 선배에게 들켰다. 영철선배는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며 나를 협박했다. 내게 돈을 달라고 하고, 나를 강간했다. 나는 괴로웠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변태’임이 알려 질까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했다. 다시 나는 ‘정상’이 된 것이라 믿었다. 나는 악몽 같은 기억을 잊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충실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남편은 어찌된 일인지 대학시절 나와 순심이의 관계를 알아냈고, 나는 위자료 한 푼 없이 이혼 당했다.

    이혼 후 힘들어하는 내게 순심이가 다시 나타났고,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사십 평생 겪었던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나의 가족은 모두 나를 비난했고 아무도 나를 만나려하지 않았다. 나는 순심이를 선택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순심이가 사고로 갑자기 죽었다. 나는 순심이의 가족이 아니었으므로 임종도 지킬 수 없었다. 우리가 30년 동안 함께 모은 재산은 모두 순심이의 명의로 되어 있었는데, 자식도 남편도 없었던 순심이의 먼 친척들이 나타나 내 동의 없이 모두 처분해버렸다. 우리는 30년 동안이나 함께 사랑하고 살았었지만,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잀었다. 나는 지금 70대의 힘없는 노인일 뿐인데, 단지 여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남들보다 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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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특별한 한 레즈비언의 것이 아니라, 상담소 내담사례 중 가장 일반적인 내용들로 재구성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봤음직한 이 이야기에 한국사회의 레즈비언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은 여성으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남성에 의해 강간당하고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모습, 이성애자로 살아가기를 끊임없이 강요당하는 동성애자들의 모습 이외에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이 이야기 아니 우리의 삶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권리, 이유 없이 소외되지 않을 권리, 이유 없이 억압받지 않을 권리’를 위한 변화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레즈비언 한 개인의 삶 전체가 소외의 역사, 억압의 역사라면 우리의 삶은 단지 살아진 것이 아니라 견뎌내고 싸워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레즈비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이 슬픔과 절망으로 얼룩지지 않고, 변화 가능성을 담은 희망의 역사로 되새김질되기를, 온몸으로 바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