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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12월 13일 23시 32분
  • 뜨거운 감자

    자료상자

    [기고] 십대동성애자 쉼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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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대동성애자 쉼터가 필요하다   
    십대여성 보호시설 실무자 워크숍에 다녀와

    :: 여성주의저널 <일다>http://www.ildaro.com ::

    _ 2006년 12월 13일
    _ 케이

    <필자 케이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강서구정신보건센터에서 실시한 ‘보호시설 십대여성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에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다른 활동가와 함께 다녀왔다. 행사의 제목은 “가출이 아닌 출가다”인데, 가출청소년 쉼터,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 그룹홈, 자립생활센터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십대여성들 2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대한 논의를 관련기관 실무자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우리 상담소에서도 가정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십대여성들의 내담을 숱하게 접하면서 가출한 십대이반들을 위한 쉼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왔던 터라, 꼭 참석하고 싶었던 워크숍이었다.

    조사내용에 포함되지 못한 ‘동성애’ 정체성

    사실, 이번 실태조사에는 동성애자 정체성 관련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십대여성의 ‘가출’에 대해 교정해야 할 행위로 보기보다,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자 자립의 기반을 닦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보고, 그러한 자립준비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십대여성들 중에서도 십대 동성애자의 문제가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웠다.

    ‘십대이반’들의 적지 않은 수가, 자녀의 동성애자 정체성이 드러난 경우 끊임없는 혐오발언과 감금, 폭행, 정신병원 입원 등 학대를 일삼고 이성애자로서 살도록 삶을 강요하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그간의 상담활동과 우리들 자신의 지난 경험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워크숍에 참석하기 전부터, 이번 실태조사에서 십대이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담당자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십대여성들의 자립을 고민하는 사람들조차 ‘십대이반’의 경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면, 앞으로는 십대이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쉼터 현장에서 활동해 온 사람들의 고민과 경험에 대해서도 우리가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올해 4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서울경기지역의 십대여성 쉼터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십대이반에 대한 인식조사를 했을 때도, 실무자들의 인식이 동성애와 십대이반에 대한 기존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십대이반 문제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갖고 많이 발언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십대이반의 정신건강 악화시키는 ‘이성애주의’

    우울이나 자살충동의 정도와 같은 정신건강지표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십대이반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가장 큰 요소가 다름아닌 우리 사회의 강고한 이성애주의라는 사실에 대해 반드시 알려야겠다는 점이었다.

    동성애자 정체성은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거나 혐오하는 사람들은, 십대이반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이들이 동성애자 정체성을 탈피해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십대이반들의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리고, 우울증을 심화시키며,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게 만드는 것은 동성애자 정체성 자체가 아니다. 동성애를 나쁜 것, 비정상적인 것, 변태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동성애자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 정체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야말로 십대이반들을 의지할 곳 없게 만드는 요소인 만큼, 이후 십대이반의 정신건강을 진단하는 사업을 펼 때 이러한 점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십대이반들이 자아존중감을 갖도록 돕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점들 역시 끊임없이 찾아나가야 할 과제다.

    가족이나 또래 친구도 이들에게 사회적 지지망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십대이반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건 나쁜 게 아니다. 그건 너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므로 지지 받고 격려 받을 일이다. 자책하거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너에게 손가락질 하는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돕겠다.'라는 말을 해 줄 지지그룹들이 많아져야 한다.

    십대이반 쉼터에 대한 꿈

    성매매 피해의 치유과정을 돕기 위해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위한 별도의 쉼터가 필요한 것처럼, 십대이반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 또래들과 함께 힘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십대이반들의 쉼터 역시 필요하다.

    십대이반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춰 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쉼터는, 한 명 한 명의 십대이반이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정체성을 매개로 자신에게 가해진 차별과 폭력에 대한 분노를 친구들과 나누며, 궁극적으로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떳떳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상담소는 여건상 자체적으로 쉼터를 운영할 수 있는 구조가 없지만, 장기적인 계획에는 쉼터 설립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두고 있다. 때문에 기존 쉼터와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에 나와 동행한 상담소의 활동가가 토론 시간을 빌어 참석자들에게 십대이반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며 연대를 제안했다. 참석자들의 반응이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십대이반 친구들에게 힘 내라는 격려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6121300004&art_menu=12&art_sub=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