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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04월 14일 0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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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레즈비언, 이성애자 가족 부양의 짐을 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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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대학교 이공대 저널 ::

    _ 2006년 3월 30일
    _ 케이

                                      레즈비언, 이성애자 가족 부양의 짐을 져야 하나?
                                      저출산 위기담론과 정부 저출산 종합대책에 부쳐


      출산은 여성이 합니다. 이는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문제입니다. 임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직접 겪어야 하는 당사자 여성의 판단과 결정입니다. 임신과 출산이란, 여성 자신의 몸 그리고 생활 전반에 걸친 변화가 수반되는 일이기에 그러한 변화 자체를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여성 당사자가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출산은 기본적으로 ‘권리’ 라기보다는 ‘의무’ 의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여성이 여성인 것은 여성이 ‘출산하는 존재’ 이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 역시 허다합니다. 여성은 아이를 실어 나르는 그릇, 즉 출산의 도구로써 그 존재 의미를 획득하는 종족인 것입니다. 엉덩이 큰 여자를 보면 ‘나중에 애는 잘 낳겠다.’ 고 말하는 사회.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보면 ‘나중에 애 낳을 때 안 좋을 텐데.’ 라고 말하는 사회. 이렇듯 ‘여성=출산 도구’ 란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에 대단히 뿌리 깊습니다.

      자, 그런 사회 통념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레즈비언의 존재는 어떻습니까? 그렇죠, 맞아요. 우리는 대단히 불온한 존재입니다. 남성과의 혼인 관계를 거부하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리고 남성과의 혼인 관계를 거부한다는 것은 출산 역시 거부한다는 것으로 비춰지게 마련이니까요. 요즘같이 당국자들이 저마다 목청 높여 저출산의 위기를 설파하는 시기라면 이런 레즈비언들이야 말로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출산의 ‘의무’ 도 다 하지 않으면서 레즈비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내 놓으라며 ‘권리’ 타령이나 하는 게 우리들이니, 그쪽 분들이 곱게 봐 줄 리가 없습니다.

      사실 정부 측에서 ‘레즈비언들은 정말 못쓰겠다. 이런 국가적 위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될 뿐이군.’ 이란 식의 직접적인 언사를 내뱉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너무 분명하다는 것이죠. 저출산 위기 담론과 정부 종합대책에 녹아들어 있는 배제와 차별의 논리란 것이 말입니다. 이제 한국의 레즈비언들은, 독신이고 1, 2인가구이면서 출산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안 그래도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사는 이성애자들의 자녀 양육비를 보태게 생겼습니다. 정부는 자녀수가 많을수록 소득공제를 늘려주되 자녀가 없는 이들에 대한 추가공제 혜택을 폐기하겠다고 하는 중이니까요. 안 그래도 대부분의 정책들이 가족 단위 중심으로 짜여져 변변한 혜택도 못 받고 사는 것이 레즈비언의 현실일진대, 우리를 소외시키는 그러한 ‘정상’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지경이라니.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제는 이러한 정책 그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애초에 저출산을 위기라고 진단하는 단계에서부터 작동합니다. 저출산이 위기라면 출산하지 ‘않는/않고자 하는/못하는 이들’ 이야말로 위기 초래의 장본인들일 터이죠. 여기에는 불임여성, 독신여성, 레즈비언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이러한 저출산 위기 담론 속에서 여성들 개개인의 차이, 여성들이 누려야 할 출산과 양육에 대한 선택권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우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건강한’ 여성과 남성이 꾸린 ‘정상’ 가족에서만 출산과 양육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린 정부 정책 속에서 남성과 혼인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선택지란 거의 없다시피 한 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하나의 예로, 레즈비언을 ‘출산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 로 간주하는 것을 들어봅시다. 그건 명백히 주객이 전도된 사고방식입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강고한 틀이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출산과 양육에 대해 가질 수 있어야 할 선택권(어떤 선택을 하건)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죠. 레즈비언들 중에도 출산할 수 있는 사람, 출산할 수 없는 사람, 출산을 원하는 사람,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 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짧은 지면이니, 결론을 좀 내려볼까요. 네. 아이를 낳고 싶은 레즈비언은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성 부부만이 자녀 양육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명백히 동성애 혐오와 맞닿아 있으니까요. 또한 자녀수를 기준으로 소득공제액을 늘리는 것과 같은 ‘정상’ 가족 중심적인 방침은 반드시 재검토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끝내 이런 방침이 추진된다면 부부-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테두리의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또 한 번 더 나락으로 모는 일이 될 겁니다. 하나도 안 이상한 우리를 자기들이 이상한 사람들로 만들어 놓고 그 책임까지 우리에게 묻는 어불성설을 가만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