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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07월 20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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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동성애자가 집회에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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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아카이브팀 처리

     

    1. 자료 정보

    자료명: 동성애자가 집회에 간 이유
    자료 형태: 영상, 비디오
    촬영일시: 96년 12월 말로 추정
    편집일시: 97년 초로 추정
    총 러닝 타임: 25분 09초
    소장: 한국레즈비언상담소

     

    2. 자료 리뷰

     

    1996년 김영삼정부 시기에 자행된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대항하여 노동계는 전면적인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 영상은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 협의회(동인협)>가 이 총파업에 지지하며 연대한 내용과 연대의 의의를 인터뷰로 남긴 것이다. 영상의 초반부에는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전면 무효>라는 자보와 피켓이 눈에 띤다. 총파업 시위 현장에 육색 무지개가 휘날리고, <‘골방에서 나와 거리로’, 동성애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라는 제목을 담은 자보와 <노동자 대파업을 지지합니다>라는 피켓을 든 동인협 회원들도 눈에 띤다. 영상에는 경복궁 앞을 가득 메운 시위대를 촬영한 장면이 스쳐지나가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장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상은 크게 1. 동성애자들이 노동자 집회에 간 까닭은? 2. Solidarité(연대, 결속이라는 뜻의 불어), 3. 남겨진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나뉘며, 각각의 파트에 대한 인터뷰로 내용이 채워져 있다.

    영상에서는 우선 노동자조합과의 연대 필요성에 대해 조금은 결이 다른 언급이 담겨있다. 첫 번째로 노동자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여성 단체와도 연대를 해야한다는 입장이 언급되었는데, ‘레즈비언의 인권이 해방되지 않는 이상 여성들의 인권이 해방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역으로도 그렇고...’라는 언급에서 레즈비언의 문제를 단순히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아닌 여성이라는 젠더적 차원에서도 함께 바라보는 시각을 이 당시에 중요한 한 축으로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까지도 성담론이 제기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나왔으며, ‘가족’이라는 규범과 이데올로기에서 노동자와 동성애자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등이 함께 제시되었다. 무엇보다도 동성애자의 대부분이 노동자라는 점이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이러한 다각적인 관점은 특정 사람을 정의내릴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이 중시되어야 함을 보여주며, 그 다양성이 곧 연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임을 시사한다.

     

    “어떻게 (연대가)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런데 그 부분에서는 우리가 억압받는 이유와 노동자가 억압받는 이유의 공통분모인 가족이 맞물려있다는 거죠. 만약에 그런 이유가 없었다면 노동자 집회에 굳이 나갈 필요도 없고 무지개 깃발을 들 필요도 없죠, 단순히 노동자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것에 핵가족...핵가족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동성애자는 큰 장애물일 수 있는데 핵가족을 유지하고 싶은 이유는 복지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싶지 않고 그걸 가족, 노동자에 떠넘기고 싶어하는 거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노동자와 얘기를 할 때 그런 부분을 많이 얘기를 했었어요. 그분들도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저희를 만났지만, 헤어질 때는 동성애자 운동과 공통분모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실천적으로, 이론적으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와 같은 언급에서 당시 집회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의 생각을 유추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때의 집회는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LG 화재노동조합과의 토론을 이끌어냈고, 현장에서도 노동자로 집회에 참여한 사람이 직접 찾아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하기도 했고, 많은 활동가들이 사진을 찍히거나 촬영하는 것에 두려움을 한결 씻어내기도 했고, 레즈비언과 게이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등 많은 성과를 낸 집회였지만,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민주노총에게 괜히 부담을 줄까봐 공식적인 연대나 선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당시에 동성애자인권운동의 연대가 가지고 있던 어려움의 지점인 동시에 한계인 지점이기도 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성소수자인권운동은 이전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다양한 영역의 인권운동에서 성소수자인권운동에 지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올해 7월, 신촌과 대구 퀴어퍼레이드에서 휘날린 몇몇 정당의 깃발(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알바연대의 지지, 기독교측의 지지 등은 96년에 있었던 지지와 연대의 의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 의미가 유효할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별, 계급, 국적, 피부색, 종교, 정치적 신념, 나이, 학벌, 출신 지역, 직업, 신체, 외모, 언어, 그리고 성적 지향성의 차이에 의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합니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 1996

     

    라는 문구는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관피아, 검피아가 날뛰는 지금, 외국인노동자가 자본의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지금, 호모포비아가 아무런 법적 제지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혐오 발언을 하는 지금, 여전히 중요하다. 이 영상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연대해나가야 하며, 그 연대의 의미를 어떻게 풍요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과 고민을 던져주었다.